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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세상/나의 여행기

우크라이나의포플라 자매의 슬픈 사랑이야기

by 김형효 2009. 6. 10.

우크라이나 통신 22

 

밤이 깊어 갈 때 어둠이 내리는 도시, 아침이 아직도 한참 먼 새벽에 밝아오는 도시에서 낯선 날들을 보내고 있다. 한창 여름 날씨다. 녹음은 우거져 내리고 햇살도 반짝거린다. 한국 같으면 하루 일과를 마무리 할 때 쯤 정오의 햇살처럼 햇빛이 눈부시다. 깊은 시름에 잠겨 있던 사람처럼 하루하루 지내기가 너무 힘겨워 오늘은 일부러 강을 둘러보러 갔다. 한강보다도 넓고 긴 아름다운 남강(ЮЖНЫЙ ЬУГ, South river)을 향해서 버스를 탔다.

 

혼자서 사색이 깊어 방에만 있는 날들이 많았던 열흘 남짓한 시간이다. 그 동안 내 생활에 슬픔이 장막을 치는 느낌이 싫어 어찌되었건 돌파구를 찾는다는 마음으로 움직인 것이다. 사람들은 낯설고 아직도 낯선 그들은 두려운 대상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대중 교통수단인 버스에서는 한결 마음이 편하다. 그렇게 30분 정도 버스를 타고 가면 대학인근 그리고 니꼴라예프 시청사 인근에 풍광 좋은 남강(ЮЖНЫЙ ЬУГ, South river)을 둘러보기 좋은 곳이 있다. 몇 번의 산책의 경험으로 파악된 익숙함이 있어 이제는 자신있게 가끔 찾는 곳이 되었다. 아마도 오늘이 다섯 번째 가는 길인 듯하다. 나는 버스를 타고 남강까지 가려다 모스크바스카야(모스크바거리)라는 거리에서 내렸다.

 

조금만 걸어가면 푸쉬킨가를 지나 니꼴라예프 시청사를 가로질러 남강 둔치에 이른다. 나는 걸어 사색하면서 우거진 숲의 맑은 공기를 마시며 남강을 향해 갔다. 많은 시민들이 휴가철 풍경처럼 형형색색의 어깨선이 드러나는 옷을 걸치고 나와 있었다. 이곳은 어디를 가도 숲이 우거져 있어 한없이 부럽다. 겨울 한철 동안 생명포고라 할 만큼 나신(裸身)을 드러내었던 나무들이 언제 그랬나 싶게 푸른 낙엽으로 절정을 이루고 있다. 그 푸른 나무숲을 만끽하며 걸었다. 홀로 걷는 것이 안타까운 기분이 드는 것을 보면 이렇게 좋은 날에 하는 탄성을 속으로 되뇌고 있다는 자각을 느끼게 된다. 홀로 홀연히 중얼거리는 말의 산책......,

 

포플라 나무에 새겨진 수많은 사연들...

 

그렇다. 좋은 것, 함께 하고픈 것, 그런 것들을 공유한다는 것은 정말 사는 재미라는 생각이다. 홀로 좋은 것을 누리는 것도 때로는 가혹이다. 누군가 동무가 되어 주었으면 좋겠다. 외로운 마음을 홀로 달래기 위해 더욱 절실해지는 그런 마음 길이다. 누군가와 통화라도 했으면 하는 생각도 든다. 히말라야 산 길을 걷다가 3.800미터가 넘는 곳에서 한국에 전화를 걸어 몇 사람과 통화했던 기억이 난다. 아무튼 함께하지 못하지만 그렇게 생각나는 그리움들이 있어 그나마 고마운 인생이다.

 

길을 걷다 우거진 포플라 나무를 보면서 우크라이나의 대표적 민족시인 쉐브첸코의 시가 생각났다. <넓은 벌판 묘지 위>라는 시다. 포플라 자매의 사랑이야기다. 두 자매를 사랑한 한 청년을 두 자매가 살해한 희극도 비극도 아니며 희극이기도 비극이기도 한 이야기다. 쉐브첸코가 1848년에 쓴 이 시는 많은 연인들에게 아픈 사랑 이야기로 알려진 시편이다. 사람이 살아가는 세상 어느 곳이라도 남녀상열지사(男女相悅之詞)만큼 가슴 저미는 사연은 없는 듯하다. 아픔이 넘실거리는 요즘 우리 사회를 살아가며 순정 가득한 사랑의 시 한편으로 가뿐 숨 몰아쉬는 하루를 쉬어가시길 바라면서......,

 

쉐브첸코의 생가 문설주에 기대어...

 

넓은 벌판 묘지 위

 

 

넓은 벌판 숲 속

높은 묘지 위

두 그루 포플라

다투듯 높이 서 있네.

바람 한 점 없지만

흰 가지 싸우듯 서있는

두 그루 자매 나무

 

두 자매는 사랑했네.

한 총각 이반을

코자크 총각 언제나

두 처녀 반갑게 맞이했네.

언니에게 사랑한다고

동생에게 그립다고 말했네.

어느 날 해지고 어두운

참나무 숲에서 세 사람 만났네.

“나쁜 사람......, 당신은 우리 자매를 농락했어요.”

사랑에 빠진 두 처녀

이반을 죽이려 산 속으로 독초 뜯으러 갔지.

독초를 뜯어 울며 울며 달이기 시작했네.

그 독약을 이반에게 먹이고

들판에 묻었다네.

둘의 마음 어땠을까?

그들은 이른 새벽

묘지 위에 엎드려 울었다네.

결국 처녀들도 독초를 먹고 죽었더라.

하나님은 이들을 벌주어

들판의 포플라로 변하게 했지.

그리하여 두 그루 포플라

허허벌판 묘지 위에서

바람이 부나 안부나

가지를 휘어

이반의 무덤을 향한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