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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세상/내가 만난 세상 이야기

네팔 가난 속에 꽃피는 풍요로운 민주주의 역사

by 김형효 2009. 6. 17.

- 네팔 시인들의 시와 네팔의 현실 정치
 

네팔의 역사와 민주주의

 

신들의 나라, 샹그릴라의 땅~! 히말라야의 신성을 말하는 나라 네팔이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네팔이다. 하지만 네팔의 현대적 의미의 민주주의는 1950년대 실현되었다. 그러나 그 역사는 오래가지 못하였다. 1950년대 이전 네팔 전역이 소수왕국을 하나로 통합한 라나(Rana)왕조의 통치를 받아왔다. 그리고 1950년 마침내 민주주의를 성취했다. 그러나 그렇게 쟁취했던 민주주의는 오래 가지 못했다. 1978년 다시 샤하(shaha)왕조 통치의 독재정치로 들어갔다. 그리고 30여년의 독재왕정은 작년 5월 29일 네팔왕이 왕실에서 쫓겨나면서 사하왕조의 역사도 종지부를 찍었고 다시 민주주의를 이루었다. 하지만 최근의 왕정 3년 전후 시기를 제외하면 폭압적인 독재정치는 아니었음도 기억할 필요가 있다. 현재도 여전히 네팔에서는 시위가 끊이지 않고 정국은 불안하다. 하지만 그들 속에서 우리와 다른 민주주의적인 꽃이 피어오는 느낌을 받는다. 무한한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고 있고 무참한 경찰 폭력은 없다.

 

우리는 경제적인 조건만을 가지고 가난한 나라 네팔이라 치부해버리지만, 그들은 민주주의적 가치를 충분히 실현시키기 위해 애쓰고 있다. 작년 5월 29일 공산(마오이스트, 네팔어로 마오바디라 일컬음)반군의 지도자 쁘라챤드라는 실질적 의미에서 실권을 장악했다. 그러나 2개월, 3개월이 지날 때까지 대통령에 취임하지도 못하고 국무총리에도 취임하지 못했다. 알고보면 코미디같은 그러나 그 이면에는 너무나 정직한 정치지도자들의 현실적 고민이 숨겨져 있었다. 그것은 네팔의 경제적 어려움을 헤쳐나가고 자신들이 주장해온 혁명적 성과를 경제적 성취로 연결시켜 업적을 이루어낼 만한 자신감이 없었기에 자신이 선뜻 취임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다른 정당에 대통령 자리를 양보하였다. 물론 정치적 실권은 의회정치의 수반인 국무총리가 갖는다. 그는 대통령이 취임한 후 한달이나 지나서 취임했다.

 

사진 1) 마덮 꾸마리 네팔(현 네팔 국무총리)와 필자의 만남

 

복잡한 네팔의 정치지형

 

정당이 200개가 넘는 네팔에서 그 동안의 7개 정당에 공산반군들의 정당을 포함시켜 8개 정당이 의결기구를 구성하고 정치적 논의 기반을 마련했다. 그러나 그렇게 판을 만들고 대통령과 국무총리에 취임하고 순탄한 정치 일정이 이어지는가 싶던 네팔은 아직도 국민들의 저항에 흔들리고 있다. 최근 그러니까 한 달 전이다. 필자의 지인이 네팔의 국무총리에 취임하였다. 그는 마덮 꾸마르 네팔로 한국에도 여러 차례 방문한 지한파 정치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에 뜻있는 젊은 네팔 노동자들이 그를 지원해왔다. 필자와는 다섯 차례의 만남을 가졌고, 지극히 개인적인 일이엇지만, 네팔 문제에 대해 심도깊은 인터뷰를 갖기도 하였다. 그러니 가까운 지인이라고 할만하다. 필자는 최근 네팔에 시인, 화가 등과 전화 통화를 하고 메신저를 주고받으며 현재의 네팔 정치 상황을 이해하고 있다.

 

마덮 꾸마르 네팔이 정치적 실권을 가진 국무총리에 취임하기까지 과거에도 여러차례의 기회가 있었다. 그러나 최대다수파 정당이 그의 취임을 반대해 왔었다. 그 다수파 정당은 실제 구왕당파나 다름없을 정도로 왕실과 가까웠던 정치인들이 주력을 이루고 있다. 아무튼 그는 그렇게 지난 정권 내내 국무총리 지명을 받아오던 사람이다. 그런 그가 왜 지금 국무총리가 되었을까? 좀 솔직한 정치구조가 그를 국무총리로 끌어낸 것 아닌가 싶다. 처음 공산반군이 정치적 실권을 잡았을 때도 그는 후보 1순위로 지목되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그는 가택연금을 면치 못했다. 왜냐하면 공산반군은 자신들과 가장 가까운 현실 정치인으로서 정치적 동지였던 그를 두고 경계심을 갖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를 인정한 상태에서는 자신들의 현실정치 공간에서의 권력행사가 어렵다는 판단에 지나치게 경계한 것이다. 그랬던 지금 그는 현실정치의 히어로가 되어있다. 무엇 때문인가?

 

당시 필자는 네팔을 방문중이었지만 그 시기에 연금상태에 있는 그를 만나지는 못하였다. 대신 필자는 비스누니스투리 네팔기자연맹회장을 만나 인터뷰를 가졌다. 그는 네팔민주화 공로를 인정받아 2008년 만해실천대상(네팔기자연맹과 비스누니스투리)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뒤늦게 네팔 정치 무대에 히어로가 된 마덮 꾸마르 네팔의 정치적 복고는 네팔의 지정학적 위치와 현실 정치에서의 일관된 역할이 그를 인정해준 결과다. 그는 공산반군과 현실 정치공간의 유일한 통로가 된 정치인이었다. 그의 역할이 더 큰 네팔의 불행을 막아낼 수 있었다는 것이다. 소통이 없는 반군과 독재정치인이 마주달리는 열차처럼 부딪혔다면 오늘의 평화는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기자는 전 기자연맹회장 비스누 니스투리로 부터 네팔의 복잡한 현실에 대해 상세히 들을 수 있었다.

 

 

사진 2) 전 네팔기자연맹 회장 비스누 니스투리와 필자 인터뷰를 가진 후

 

네팔 지도자들의 현실적인 고민 - 당파보다 앞선 실행과제

 

그것은 정치적 이해타산을 가진 싸움을 넘어선 네팔의 역사를 추동해 나가려는 수많은 뜻있는 사람들의 공통된 고민임도 알았다. 네팔에는 지금 시급한 과제가 행정구역 개편에 있다고 했다. 당시 복잡하게 일곱가지 예를 들어 정리했으나 안타깝게 지금 당시의 메모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 다행히도 그중 가장 큰 문제 중 두 가지는 기억한다.

첫째는 행정구역 개편문제 그 고민을 풀어보면 다음과 같다. 거리는 가까운데 깊은 계곡이 있어 하나될 수 가 없는 지형(계곡과 계곡은 가까워 눈 앞인데, 히말과 히말이 연결지어지지 않는 한 며칠씩 걸려서 가야하는 거리라는 점), 멀기는 한데 하나되지 못하는 계곡보다 가까운 지역(교통편이 있어서 눈앞에 계곡을 건너지 못하지만 도로로 이어진 곳은 멀지만 가깝게 연결된다는 점)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런 지역적인 것들을 올바로 정리를 하기가 난감하다는 것이다. 그런 문제를 시급하게 해결하지 않으면 고른 발전을 도모하기가 너무나 힘든 현실이고 그 어느 누구도 그 대안을 바로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둘째는 종족간의 갈등문제가 잠복하고 있는 현실이라고 했다. 네팔은 각 지역마다 종족이 집단을 이루며 살고 있다. 우리네 성씨개념의 차이와는 완연하게 다르다. 가령 우리가 짐꾼으로 알고 있는 쉐르파가 모여사는 지역이 있고 구릉이라는 종족이 모여 사는 지역이 있다. 또한 같은 몽골리안들 사이의 경계도 있지만 아리안 족도 있다. 그들의 정서적 바탕이 티벳인 종족이 있고 인도의 힌두인 종족도 있다. 그러나 그 종족들의 거주지가 일정하게 분포되어 있지도 않고 이곳 저곳 흩어져 있기 때문에 곤란하다는 것이다. 당파적 이해를 결합시키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은 문화적으로나 언어(네팔 트리뷰반대 네팔어과 교수이자 시인이기도 한 메가라즈 새르마 먼줄 교수에 의하면 102개 언어~122개 종족언어가 있다고 함)까지 각기 달리 사용하며 자유로운 세상, 현대적 의미의 발전의 모델을 찾아가고 있는 네팔의 다양한 종족들의 자각이 그들의 발목을 잡으면서 민주주의를 더욱 강화시켜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쉐르파 종족의 에베레스트라는 독자적인 텔레비전 방송국까지 생겨났다.

 

아무튼 그런 저런 복잡한 현실이 개선되지 않고서는 그 누구도 현대적인 의미의 정치에서 장기집권을 할 수 없다. 그만큼 국민들의 지지를 받아낼 수가 없고 오랜 세월동안 독립적인 국가를 형성해온 네팔사람들에게 단련된 민주주의의 전통이 있어 용인하지도 않을 것이란 것이다. 따라서 권력을 잡기 위한 권력이 아니라 일을 하기 위한 권력이 필요한 것이어야 하리라. 지금 현재 네팔의 혼란 이면에서는 능력껏 실천하고 그 역할이 수행되지 못하면 언제든 물러서는 전통을 만들어가는 과정의 역사가 쓰여지고 있다. 오늘도 네팔 카트만두에서는 연일 데모가 이어지고 있지만, 우리네처럼 광장을 봉쇄하거나 강제적인 탄압은 없다. 우리가 모르고 있는 사실 중에는 네팔이 왕의 장기 집권이 있었지만, 무소불위의 권력적인 탄압은 없었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의회 정치권력이 부패한 것이 문제였다.


아무튼 현재를 볼 때 필자는 우리에게도 네팔 정치인들, 네팔의 지도자들이 갖는 그 아름다운 선실행과제에 대한 고민이 공유되길 바란다. 그것이 우리에게는 바로 민족 통일 문제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이념과 노선의 모든 문제를 떠나 민족공동체적 관점은 하나로 통일을 하고 나머지를 가지고 경쟁해야 한다는 것이다. 민족문제는 당파적 아귀다툼의 구실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 선실행과제에 대한 명확한 태도와 입장이 없는 정치인은 그 안위를 보장받을 수 없는 현실이 될 때 비로서 우리에게 밝은 미래는 약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아래의 시는 네팔의 민주화 과정을 노래한 두 편의 시이다. 최근 우리네 현실을 생각하며 현대적 의미에 민주주의가 먼저 실천되었던 네팔의 민주주의 투쟁과정에 상처의 흔적을 담은 시를 필자부터 읽으며 우리 모두가 보편가치로서 민주주의에 대해 생각해볼 것을 청하고 억압의 정치를 행하는 당사자들에게도 일독을 권한다.

 

나는 국민
내 몸은 국토
내 위로 걸으라
내 가슴을 짓밟고
내 목소리를 틀어막고
내 갈비뼈를 부러뜨려도 좋다
민주주의의 최후의 싸움터에서
나는 간증하리니
당신의 참 모습을

 

- 詩 슈라반 무카릉(shravan mukarung)

 
시를 쓰며 우리는
독재자들이나 살인자들과 같은 말을
용납하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도 바로 통치자가 그들이라면
우리는 어이해야 하나?

 

시를 쓰며 우리는
압제자나 탈취자와 같은 말을
용납하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도 바로 통치자가 그들이라면
우리는 어이해야 하나?

 

시를 쓰며 우리는
독재자와 히틀러와 같은 말을
용납하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도 바로 통치자가 그들이라면
우리는 어이해야 하나?

 

시를 쓰며 우리는
방종이나 부패나
공모자와 밀수범과 같은 말을
용납하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도 바로 통치자가 그들이라면
우리는 어이해야 하나?

 

우리 통치자들은 바로 그런 자들이라서
우리는
버리지 못하는 것이다.
추악, 부정직 그리고 강도같은 말들을

시를 아름답게 하기 위해서
우리는 이 나라에서
걷어내야 하는 것이다.


배고픔
억압
부패
부정직
그리고 독재를
기어이 이루고야 말 민주화를 위해

통치자가 선하게 되는 날에
아름다운 시는 저절로 쓰게 되리니.

 

- 라잡(Rajab)의 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