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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세상/나의 여행기

죽은 자도 행복한 나라? 죽은 자를 다시 죽이는 나라?

by 김형효 2009. 9. 1.

-갇힌 광장을 사색한다, 광장의 자유를 보장하라!

 

날마다 우리는 아침에 눈을 뜬다.

 

그러나 그것은 현상일 뿐 어쩌면 날마다 눈 뜨는 연습중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눈을 뜬다는 것은 세상을 보기 위한 일일 것이다.

아침에는 가족을 보고 낮에는 일터에 사람들을 보고 그리고 사시사철 철따라 변하는 자연을 보고......,

 

 

▲ 2500년된 도시의 광장 예빠토리야는 2500년이 되었다고 한다. 조성된 광장은 아니지만,

우크라이나에는 드넓은 영토만큼이나 많은 광장들이 벌판처럼 넓게 펼쳐져 있다.

ⓒ 김형효 2500년된 도시의 광장

▲ 자유로운 집회가 보장된 마이단 광장 수도 키예프의 마이단 광장은 우리네 광화문처럼 소도 키예프 시내의 중심지다.

일명 독립광장이라 불리기도 한다. 수많은 천막들은 금융위기로 노동자들과 시민사회단체가 집회를 하는 장면이다.

ⓒ 김형효 키예프 마이단 광장

 

그런데 우리가 살아가며 어른이 되고 책임질 일이 늘어나며 세상의 변화를 바로 보는 눈이 필요하다.

그러고 보면 눈만 떴다고 다 끝나는 일이 아닌 것이다.

얼마나 이 세상을 바르게 보는 눈을 떴는가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세상을 보는 눈을 바로 갖지 못했다면 눈 뜬 맹인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아침 산책길 2시간 동안 이런 저런 온갖 사색을 했다.

사색이라 다짐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절로 사색이 내게 걸음 걸어오는 것이라는 생각도 했다.

낯선 나라의 작은 도시의 길을 걸으며 쓸모없는 망상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살아 있다는 것은 생각이 인도하는 길을 갈 줄 아는 존재일 때 살아있는 것이란 생각을 한다.

 

▲ 오래된 광장과 오래된 생명 오래된 광장 근처에 핀 꽃과 달팽이!

꽃과 달팽이도 이 도시의 역사처럼 오래된 생명은 아닐까?

ⓒ 김형효 오래된 광장과 오래된 생명

▲ 생명의 보고 생명의 보고가 아닌가?

거리의 한복판에 수많은 달팽이들이 양식장이 아닌가 생각될 정도로 작은 식물에 꽃송이처럼 매달려 있다.

ⓒ 김형효 생명의 보고

 

살아있는 모든 것은 꽃을 피운다. 그리고 열매를 맺는다. 죽지 말아야 한다.

역사에서도 사회에서도 그러면 꽃을 피울 수 있을 것이다.

죽지 않는 다는 것은 각성한 의식을 놓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

것을 놓아버리는 순간, 변절하고 변질되어 삶이 엉망이 되는 것이다.

가족적이고 사회적이고 역사적인 그 모든 영역에서 변절과 변질의 틀 속에 갇히게 되는 것이다.

 

죽은 자들의 동상이 이곳 우크라이나 거리에는 많다.

죽은 자들의 이름이 거리에 이름의 대부분이다.

그런데 난 그 죽은 자들이 참 행복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나라의 이순신 장군과 최근에 새로 세워졌다는 세종대왕은 참 죽어서도 불행하고 슬픈 상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온갖 혼란과 질곡의 현장에서 자신의 후손들의 갈등과 반목을 바라보는 신세가 아닌가?

 

그들을 살려라! 난 기회가 되면 외치고 싶다.

산자도 죽겠고 죽은 자도 죽이는 세상이 되어가는 것 같아 씁쓸하다.

갇힌 광장이라는 신조어가 생기는 나라! 참 서글프다.

나는 한 번도 광화문 광장에 서 보지 못했다. 그러나 광장이 생겼다니 반가운 마음이다.

 

▲ 민족시인 타라스 쉐브첸코 우크라이나 민족시인 <타라스 쉐브첸코>

예빠토리야 거리에도 레닌대로가 있고 타라스 쉐브첸코의 거리가 있다.

난 그는 죽어서도 행복한 사색, 행복한 마음으로 거리를 바라보고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 김형효 민족시인 타라스 쉐브첸코

 

그런데 그곳이 질시와 반목의 재생산이 되는 것이라면 광장을 뭐하려고 만들었나?

명박산성(?)에 갇힌 이순신 장군을 본 적이 있다.

이제 힘에 의해 그것도 공공의 이익을 대변해야할 공권력에 의해 갇힌 광장이라면

그것은 생기면서 죽어버린 것과 뭐가 다른가? 이제 갇힌 세종대왕을 석방하라고 해야 하나?

 

난 우크라이나에 올 때 사회주의에서 초기자본주의로 편입하려는 시도를 하는 나라로 알았다.

그러나 내 눈에는 자유로운 시장과 자유로운 사회주의가 공존하는 느낌이다.

속내를 더 들여다보아야 할 시간이지만, 아무튼 우리처럼 일상화된 반목은 없는 듯하다.

그러니 죽은 자도 행복한 도시가 아닌가 생각된다.

 

죽은 자도 행복한 나라가 되어야 정말 낙원이 아닐까?

경제 발전이나 문화 예술의 발전, 정치적 발전

그 모든 것들은 평화를 위한 것 인간의 자유로운 영혼을 지켜주는 것이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인간의 영혼을 지켜주지 못하는 그 어떤 발전도 결코 발전이라 표현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그것은 결국 인간을 파괴하는 범죄행위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