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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세상/내가 만난 세상 이야기

내가 보는 한국은 안타깝고, 나를 보는 한국은 다행이다

by 김형효 2010. 4. 28.

 

 

- 아우와 함께 한 여행지의 기록
낯선 나라를 찾은 아우와 며칠 동안 여행을 함께했다. 여행만을 목적으로 온 것은 아니지만, 모처럼 아우와 함께할 수 있어 좋은 시간이었다. 여행은 활력을 준다. 많은 사람들이 여행을 통해 얻고자 하는 것들이 그런 것이리라.

 

이번처럼 여행기간 내내 조국의 소식에 귀를 기울이며 여행을 한 적도 없다. 천안함 침몰로 울음바다가 된 나라, 그 때문만은 아니다. 지난해엔 필자가 해외봉사단으로 지원하고 연수를 시작한 첫날 새벽 용산참사 소식을 처음 접했다. 그리고 그 사건의 해결을 보기 전에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소식을 접했고 그 슬픔이 채 가라앉기도 전에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소식이 이어졌다. 그렇게 슬픔으로 얼룩진 채 한해가 저물었다. 허구한 날 가슴 아픈 소식이 이어져, 참담함이 더해만 간다.

 

  
▲ 수도 키예프의 스시집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예프에서 알게된 우크라이나인 친구 빅토르, 그는 전러시아 해군이었으며 현재 외항선 함장이다. 그의 초대로 처음으로 찾은 일본 스시집이다.
ⓒ 김형효
수도 키예프의 스시집

 

그렇게 해외에서 봉사단의 일상을 보내는 필자에게 한국은 부끄럽고 서글픔으로 얼룩진 모습만 보여주었다. 지난 주 2년간 해외봉사단 활동을 마치고 복귀하는 선배단원들의 이야기 속에도 안타까움이 뭍어 있었다. 어두움이 가득한 소식을 접하고 귀국하는 나라는 자랑스러울 것이 없다. 대체 조국은 왜 마음을 이리도 아프게만 하는가? 위정자들은 국격을 논하지만, 해외에서 조국을 보는 마음에는 초라한 조국의 몰골만 드러나 보인다.

 

필자는 가끔씩 우크라이나의 정치소식과 문화 소식을 전하는 기사를 쓴다. 최근 한국 뉴스들은 혹 외국인들이 알까 부끄러울 지경이다. 국회의원과 청와대 그리고 법리를 다루는 검찰 권력의 만행이 해외에 두루 암세포로 가득한 조국의 얼굴처럼 보여질까 노심초사하게 된다. 

 

  
▲ 우리를 반겨준 현지인들 우크라이나의 전수도인 동부 하리코프에서 왔다는 여성들이다. 그들이 우리를 반겨주었다.
ⓒ 김형효
우리를 반겨준 현지인들

  
▲ 오데사 포템킨 계단에서 본 흑해 영화 전함포템킨 계단에서 바라본 흑해바다, 무역항인 오데사항은 유럽 각구의 바닷길이 있다.
ⓒ 김형효
오데사 포템킨 계단에서 본 흑해

우크라이나 대부분의 도시에서 한국인에게 던져지는 질문은 '중국 사람인가? 일본 사람인가?' 그리고 세 번째 쯤에 '한국 사람이냐?'다. 동양인으로 대표되는 중국인들에 대한 비호감은 '끼따이(중국사람)!끼따이!'라는 놀림으로 이어지고 있다. 우리에게 그런 놀림성 호칭이 없어 다행이지만, 혹시나 비리로 가득한 천박한 나라 사람으로 보는 것은 아닐지 걱정이다.

 

지금 일본의 스시전문점이 최근 1년 사이 우크라이나 전역에 확산되어 주요거리마다 자리하고 있다. 그 상징의 하나로 3개월 전만 해도 없던 스시집 하나가 보란 듯이 우크라이나 한국대사관 정면에 들어섰다.

 

그들의 가공력은 참으로 대단하다. 우크라이나의 뷔페식인 우크라이나 전통음식점 부자타하타(вузатахата)를 모방해서 야뽄하타(японхата)를 만든 뒤 우크라이나 전역에서 열었다. 수도 키예프는 물론 우크라이나 남부의 주요도시인 심페로폴, 세바스토폴, 얄타, 니꼴라예프는 물론 서부의 르보프에서도 그런 모습을 볼 수 있다.

 

 

 

 

  
▲ 르보프 국립대학교 서예 강의 르보프 여행중 르보프 국립대학교 일본어 강사를 위한 서예강의 시간을 가졌다. 학장이 깊은 관심을 보여주어 선물을 전했다.
ⓒ 김형효
르보프 국립대학교 서예 강의

  
▲ 서예 수업후 기념 촬영 좌로부터 필자, 한국어강사 조소현 단원, 일본어 강사 이라와 울리아나 처음 쓴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를 들고 기뻐하고 있다.
ⓒ 김형효
서예 수업후 기념 촬영

 

우크라이나에서 중국의 상권과 일본의 활약은 눈에 띈다. 한국의 빈익빈 부익부의 경제 모델이 그대로 전이된 모습이다. 한국의 경제가 대기업이 무너지면 두려움에 떠는 것처럼 외국에서의 한국 모습도 마찬가지로 보인다. 경제에는 무개념에 가까운 필자의 눈에도 그러하니 경제에 밝은 사람들은 얼마나 한심한 구조일까? 지금 우크라이나는 중국, 일본은 물론 베트남과 태국의 소규모 장사꾼들도 많지만, 한국의 경우는 대기업만이 진을 친 느낌으로 우리의 미래를 어둡게 하고 있다.

 

필자는 이번 여행 중 몇 차례 현지인들의 반가운 환대를 받았다. 여행객이 비교적 많은 우크라이나 남부와 폴란드 접경지역인 르보프를 여행할 때였다. 아우와 휴가기간 함께한 키예프 군사학교 최용섭(태권도)단원 그리고 필자 일행을 보고 함께 사진을 찍자고 달려드는 우크라이나의 어린 학생들이 그나마 위안이 되어 주었다. 우크라이나 서부 르보프에서는 더욱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있었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우리에게 그런 관심들은 실제로 의미 있는 것들이 못되기 때문이다.

 

  
▲ 예파토리야 시문화국 좌로부터 아우 김현남, 예파토리야의 시인 알렉산드라와 시문화국 직원들
ⓒ 김형효
예파토리야

 

우크라이나 서부 르보프를 여행할 때 조소현(한국어 분야) 원의 부탁으로 르보프 국립대학교 일본어과 강사인 우크라이나인 2명에게 서예 강의를 하게 되었다. 한 시간 정도 진행된 강의에서 보여준 그들의 관심은 우리 문화에 자부심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했다.

 

필자는 여러 차례 붓글씨를 써서 선물로 주기도 했고 부탁을 받고 써주기도 했다. 그들에게 강의가 시작되기 전 선물을 전했다. 그들은 커다란 선물을 받기라도 한 것처럼 기쁘게 받았다. 현지 우크라이나인들의 반응은 우리의 예상을 넘는 관심을 보여주었다. 이런 관심에 맞게 우리의 것을 전파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아우가 왔을 때 예파토리야 시 문화국을 방문했었다. 놀랍게도 필자가 선물했던 붓글씨들이 시문화국의 사무실마다 좋은 자리에 장식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