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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세상/내가 만난 세상 이야기

'무차별' 만끽한 우크라이나 노동절 축제

by 김형효 2010. 5. 2.

 

 

민족, 직업, 남녀노소 모두 평등하게... 놀라운 축제일

 

 

 

 

 

예파토리야 고려인 협회장인 김플로리다 바실리예브나(55세)의 말에 의하면 노동절 아침부터 행사 시간동안 인구 8만의 예파토리야의 모든 교통편의 운행이 중단되고 오늘과 내일은 도심 곳곳에서 축제가 벌어진다고 했다. 행사가 진행되는 예파토리야 시청광장을 찾아가는 길에는 벌써부터 교통이 통제되고 있었다. 행사장에는 많은 인파가 이미 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 나는 고골입니다. 분장한 사람이다. 고골의 생몰연대가 기록되어 있다. 행사가 진행되는 주변에 고골거리가 있다.
ⓒ 김형효
나는 고골입니다.

지난 일 년 동안 일해 온 각개의 예파토리야 시민에 대한 시상식이 열리고 있었다. 고려인 중에는 수상자가 없었지만, 몇 해 전 김플로리다 바실리예브나도 수상자 중 한 사람이었다 한다. 이번에 수상한 사람은 시상식장에 마련된 전시대에 일 년 동안 해당자의 이력과 사진이 함께 전시된다. 필자는 시상식이 끝나면 이곳에서 소수민족 학생들의 공연이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리고 이 시상식이 메인 행사일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한국식 사고일 뿐이었다.

 

잠시 후 김플로리다 바실리예브나와 고려인 학생들이 옷을 갈아입는 예파토리야 로케트 극장 앞에는 수많은 인파가 몰려들었다. 물론 예파토리야 거주 소수민족 학생들도 많이 눈에 띄었고 서로 알고 지내는 많은 인사들과 인사도 나누었다. 이제 친근한 예파토리야 시장과도 인사를 나누었다.

 

  
▲ 펼침막을 든 고려인 두형제 61세 아르춈과 57세 알렉세이 펼침막을 든 고려인 두형제 61세 아르춈과 57세 알렉세이다. 그들은 이번 노동절에 처음으로 소수민족인 한민족이라는 이름으로 퍼레이드에 참석했다. 등을 보인 사샤가 풍선을 잡으려하고 있다. 두 분의 네살된 손자다. 리자는 손에 태극기를 들었다.
ⓒ 김형효
고려인 두형제 61세 아르춈과 57세 알렉세이

옷을 갈아입은 고려인 학생들 틈에 아르춈(61세)은 필자가 준 개량한복을, 그의 손자인 사샤(4세)는 한국에서 하울 님이 보내주신 한복을 입고 참석했다. 그들은 그동안 행사에 한 번도 참석한 적이 없었다. 물론 노동절 행사에도 한 민족으로 한복을 입고 퍼레이드에 참석하는 것은 처음이라고 한다. 시에서는 각 소수민족의 펼침막을 준비해 주었다. 시문화국 관계자가 필자를 알아보고 고려인들이 들고 퍼레이드에 참석할 펼침막을 건네주었다.

 

  
▲ 예파토리야 의과대학 학생들 필자의 촬영에 즐거운 낯빛으로 응해주었고 곧이어 모든 학생들이 함께 호응해주었다. 그들을 리더하던 선생님은 사진을 전해달라며 학교 주소를 알려주었다. 그들의 호응에 필자는 학생 대표의 전화번호를 받았다.
ⓒ 김형효
예파토리야 의과대학 학생들
  
▲ 예파토리야 유치원생들 우리도 당당한 예파토리야 시민입니다. 예쁘게 차려입은 아동들이 손에 풍선을 들고 한 걸음 내딛을 시간을 기다리고 있다. 표정이 사뭇 진지하다.
ⓒ 김형효
예파토리야 유치원생들

노동절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고 학습해본 적이 없던 필자로서는 충격적인 아름다움으로 다가온 축제다. 남녀노소와 계층과 직업, 민족의 구분 없이 서로가 주체적인 모습으로 자신을 마음껏 드러내며 함께하는 퍼레이드는 그야말로 대단한 축제였다.

 

유치원생과 아주 오래된 역사를 살아온 할아버지, 할머니까지 학생과 일꾼들 미용업을 하는 사람과 의사들, 대학교수들 모두가 도로를 메우고 걸으며 풍선을 들거나 각종 인형과 조형물들을 만들어 자신들의 직업에 대한 자랑을 내세우며 참석한 축제였다. 부러웠다. 참으로 감격스러웠다. 나는 낯선 이국의 사람인데 나도 그들 속에 하나였다. 그들은 누구나 거리낌없이 반겨주기까지 했다.

 

더욱 더 기쁜 것은 필자의 활동 성과로 인해 내 동족들이 당당하게 행사에 주체적으로 참여할 수 있었고 어린 이산하(리자, 5세)의 손에는 막대 태극기가 들려질 수 있었다는 것이다. 나는 새삼스럽게 막대 태극기를 보내준 내 고향 초등학교 동창인 친구에게 갑형아! 고맙다고 입으로 읊조리고 있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좀 생떼를 써서라도 몇 개 더 사서 보내달라고 할 것을... 부담을 끼치면서도 혹여라도 큰 부담은 주기 싫다고 몇 개만 보내달라고 했었다. 물론 그 고마움은 초등 동창생뿐이 아니다.

 

  
▲ 시청광장에 선 분장한 사람들 조각작품처럼 서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문화 속에 인물들이다. 예파토리야 시청광장은 시에서 주관한 노동절 행사의 중심 무대였다.
ⓒ 김형효
시청광장에 선 분장한 사람들
  
▲ 화려한 날을 살았던 할머니 두 분 자랑스러운 노동자였다는 두 분 할머니다. 가슴에 단 훈장이 그분들이 살아온 지난 날의 자랑으로 빛난다.
ⓒ 김형효
화려한 날을 살았던 할머니

오늘 새삼스럽게 그동안 이곳의 고려인들에게 관심을 갖고 한복과 학용품등을 보내주신 분들, 최근 크리미야 천문대 연구차 이곳을 찾은 천문학 연구자 한인우 선생님 등 모든 분들에게 더욱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고맙습니다. 여러분들의 그 관심으로 이 아름다운 축제에 우리의 태극기와 한복이 그리고 내일은 다시 노래가 불려질 것입니다.

 

고려인들의 퍼레이드가 끝나고 행사는 계속되었다. 1시간 이상 진행된 퍼레이드를 취재하다가 지쳐 이제는 쉬고 싶다는 마음으로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돌아오는 길에 더욱 뜻 깊은 만남이 또 필자를 기쁘게 했다. 사진을 찍으며 퍼레이드 행렬이 진행하는 반대편으로 걷고 있었다. 회사들도 참석한 행사장에 굴착기도 함께했다. 그런데 그 뒤를 따르던 우크라이나 여성들이 필자에게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Я ТЕБЯ ЛЮВЛЮ)"라고 말하며 손으로 키스를 날리는 행동을 보여주었다.

 

  
▲ 퍼레이드를 마친 후 시장과 고려인들 소수민족들의 퍼레이드가 끝나고 기념촬영, 가운데 예파토리야 시장과 왼편에 아르메니아어 교사 시장 오른쪽은 한복을 입은 김플로리다 바실리예브나
ⓒ 김형효
퍼레이드를 마친 후 시장과 고려인들
  
▲ 반가워요, 까레이스끼~! 한국에서 왔다고 말하자 곧바로 자세를 취해주는 양궁 선수들......, 한국 양궁이 유명세를 타는 것을 실감하는 순간이다.
ⓒ 김형효
반가워요, 까레이스끼~!

당혹스럽고 놀라는 필자에게 그녀는 크림 텔레비전에서 보았다고 말했다. 그때야 필자는 무슨 뜻인지 알아차렸다. 지난 심페로폴 고려인 축제에 참여했을 때 한복을 입은 남성이 없어 필자가 남자 한복을 입고 한민족의 문화를 소개하는 크림 텔레비전 취재에 응했었다. 그런데 그때 촬영된 프로그램이 방송된 모양이다. 알았다면서 고맙다고 인사를 나눈 후 다시 몇 걸음 걸으니 양궁수련생들이 필자를 보고 반겨준다.

 

나는 한국에서 왔다 말하고 자세를 취해주길 청했다. 그들도 한국 양궁에 대해서 잘 아는 듯했다. 그 뒤를 이어 이번에는 예파토리야야에서 처음 만난 태권도 수련생들의 대열이다. 그들 중 인솔자에게 다가가 인사를 전했다. 그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인솔자에게 연락 전화번호를 받았다. 잠시 후 손을 흔드는 필자를 향해 수련생 전원이 잠시 길을 멈춘 후 "태! 권!"이라고 힘찬 구호로 답례를 해주었다. 감동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참 고마운 인사였다.

 

  
▲ 예파토리야에서 만난 태권도 수련생들 선두 대열에 태권도 수련생들이 퍼레이드를 펼치고 있었다. 사범의 의미심장한 미소에도 반가움이 숨어있는 느낌이다. 사범의 띠에 한글로 새겨진 세계태권도연맹이 눈에 띈다.
ⓒ 김형효
태권도 수련생들

이제 내게 우크라이나는 낯선 나라가 아니다. 그런데 오늘 필자에게 노동절은 참으로 낯설기만 했다. 아름답고 아름다운 인간의 세계가 이런 것인가 싶었다. 그 모습을 다 전하지 못하는 아쉬움이 크다. 인간의 아름다움이 노동하는 사람들을 끝없이 존중하고 그 노동이란 살아있음 그 자체임을 확인해주는 오늘은 필자에게 인간을 배우게 하는 아름다운 수업시간이었다. 참으로 기쁜 하루가 저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