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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세상/내가 만난 세상 이야기

한글학교 학생과 고려인을 만난 한국천문연구원 한인우 선생

by 김형효 2010. 5. 5.

 

 
2500년 고도 예파토리야 시 창립일 행사 열려
  
▲ 크리미야 천문대를 찾은 한인우 선생 좌로부터 크리미야 천문대 세르게이(61세), 가운데 한국천문연구원 한인우(54세), 오른쪽 데이비드(55세) 선생이 만나 반갑게 악수를 나누고 있다.
ⓒ 김형효
크리미야 천문대를 찾은 한인우 선생

한국천문연구원의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는 한인우 선생이 크리미야 천문대와의 공동연구를 위해 우크라이나를 찾았다. 사전에 이미 문의를 주신 인연으로 공항으로 마중을 나갔다. 수업이 없는 평일이기도 하고 고려인을 만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혀와 자연스럽게 만나게 된 것이다. 선생은 지난 2003년부터 우크라이나 크리미야 천문대와 공동연구를 해왔으며 이번 방문은 그 연구를 마무리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 한인우 선생이 준비해온 격려 물품들 크리미야 천문대 연구차 오시면서 아이들의 학용품과 필자에게 생필품을 준비해 전달해 주셨다.
ⓒ 김형효
한인우 선생이 준비해온 격려 물품들

공항에서 기다리고 있던 중 크리미야 천문연구원의 데이비드(55세) 선생이 필자를 알아보고 인사를 건넸다. 우리는 함께 크리미야 천문대를 찾아 천문대 연구원들과 인사를 나누고 시설물을 함께 둘러보았다. 한인우 선생님은 특별히 한글학교 학생들을 위한 학용품과 필자의 생필품 일부를 챙겨 오셨다. 선생은 연구 활동을 마치고 노동절부터 4일간의 연휴가 이어지자 5월 2일 오전 필자가 있는 예파토리야를 찾아온 것이다.

 

  
▲ 예파토리야 시장과 인사를 나눈 후 시창립 행사장에서 만난 예파토리야 시장과 인사를 나눈 후 기념촬영
ⓒ 김형효
예파토리야 시장과 인사를 나눈 후

 

 

  
▲ 무대에 오르기 전 아이들과 함께 한글학교 학생들이 예파토리야 시창립기념 무대공연을 위해 무대에 오르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 김형효
무대에 오르기 전 아이들과 함께

5월 2일은 예파토리야 시 창립일이다. 전날에 이은 대규모 행사가 진행되는 시내에는 볼거리가 많았다. 인구 8만이 살고 있는 2500년 고도인 예파토리야는 예파토리야라는 사람의 이름을 딴 이름이지만, 과거 마흐메드 술탄과 예카테리야 여제까지 두루 도시의 역사 속에 흔적을 남긴 도시이다. 전날에 이어 고려인들도 당당히 이 도시의 주체로서 2일 날에도 주요 도시 성원으로 소수민족대표 공연에 참여하였다.

 

봄이 오자마자 쏜살같이 달음박질을 치는 계절처럼 여름이다. 꽃이 만발하고 개나리, 살구꽃, 복숭아꽃은 벌써 피었다지고 이제는 라일락이 온 거리를 짙은 꽃향기로 도심을 물들여놓고 있다. 성급한 사람들이 다수 해수욕을 즐기기 시작했다. 남녀노소가 성급하게 뜨거운 여름을 향하고 있는 느낌이다. 함께 필자의 집에서 모닝커피를 마신 후 오데사에 살고 있는 크리미야 천문대 데이비드 선생을 전송하였다.

 

  
▲ 한글학교 학생들의 노래공연 예파토리야 시민 뿐아니라 연휴를 맞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각지에서 몰려든 관광객들이 찾은 무대에서 당당하게 노래를 불러준 한글학교 학생들
ⓒ 김형효
한글학교 학생들의 노래공연
  
▲ 예파토리야에 학교 무용단의 공연 모습 다양한 소수민족들의 문화공연과 예파토리야 내 학교 무용단의 공연 등 다채로운 행사였다.
ⓒ 김형효
예파토리야에 학교 무용단의 공연 모습

곧 둘이서 예파토리야 시내를 산책하며 고려인이 일하고 있는 구도심 인근의 시장을 둘러보았다. 그곳의 고려인들에게 멀리 고국에서 온 선생을 소개하였다. 모두 반갑게 맞아주었다. 그곳에 한 할머니가 파는 배추김치를 한사코 집에 가져가서 먹으라며 싸주려는 것을 나중에 오겠다고 말하고 물러섰다. 고마운 정성이다. 낯설고 물선 곳에서 긴 세월 인내와 고통 속에 살아오셨을 할머니의 그 마음이 너무도 고맙고 고맙다.

 

오후 2시부터는 시창립 문화행사가 열린다. 구도시의 따따르 전통가옥 사이 길에서 열리게 된다는 행사에 가기 위해 급하게 택시를 탔다. 그러나 예정보다 조금 늦었고 이미 알고 있었던 장소와 행사장은 달랐다. 사실 구도심 전체가 수많은 관광객으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각종 볼거리가 풍성하게 길가를 메우고 있기도 했고 관광객들도 만면에 웃음을 잃지 않고 있었다. 꽃향기가 코끝을 향기로 채우고 있는 도시, 눈에도 아름다운 전통과 현대의 문화전위를 아울러 보여주고 있었다.

 

더욱이 우리 고려인들은 처음으로 전날 퍼레이드에 참여했었다. 다음날 5월 2일은 자신들이 살고 있는 에파토리야 시 창립일 무대에 섰다. 스스로 당당한 주인이 되어 처음 고국 아이들의 동요를 불렀다. 우리 한글학교 학생들은 오늘도 변함없이 "곰 세 마리"를 예쁜 한복을 입고 열창하였다. 10여개 소수민족과 다양한 계층별 참가자들이 줄지어 있어서 한 차례의 합창과 한 차례의 독창의 기회가 주어진 무대였다.

 

  
▲ 고려인 사샤와 악수를 나누고 있다. 고려인 4세인 사샤와 악수하고 있다. 저 멀리서 사샤의 어머니인 악사나가 그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고 있다.
ⓒ 김형효
고려인 사샤와 악수를 나누고 있다.
  
▲ 고려인 세르게이 집에서 준비한 만찬에서 노래 한곡 고려인 세르게이 집에서 준비한 저녁 만찬을 마무리 할 즈음, 한인우 선생이 고려인 어른들을 위해 노래를 선사하고 있다. 필자도 흥겨움에 우리 노래를 선사했다.
ⓒ 김형효
고려인 세르게이 집에서 준비한 만찬에서 노래

짧은 시간, 2박 3일의 짧은 여정 동안 고려인들을 만나고 한글학교 학생들을 만난 한인우 선생은 5월 4일 낮 다음 목적지인 독일 뮌헨으로 떠나시며 많은 아쉬움을 토로했다. 짧은 만남이지만, 아이들에게 길을 열고 오셨고 그 곁을 본 아이들에게는 크나큰 격려가 되었으리라 생각하며 고마운 마음이다. 선생이 마음 놓고 말할 수 없는 먹먹한 가슴으로 떠났지만, 훗날의 기약이 없어 아쉬움을 더했으리라 생각한다. 더불어 필자에게 무한한 격려를 주셨고 아이들을 위해 좋은 의견도 주셨다. 필자는 그런 마음들이 아이들에게 잘 전달되도록 하겠다고 인사를 전했다.

 

낯선 만남 뒤에 아쉬운 여운이 아이들에게도 남아있으리라 기대한다. 내일부터 다시 연휴가 끝나고 수업이 시작된다. 오랜 시간 주 2일 수업을 하다 한 달 전부터 주 4일 수업으로 수업일수가 늘었다. 이제 좀 더 많은 것을 이야기 할 수 있으리라 기대해본다. 아이들이 스스로 당당해진 모습이 참으로 고맙게 느껴진다. 오늘도 뜨겁던 태양이 저물녘을 향해 갔다. 하지만 아직도 예파토리야의 늦은 밤은 밝기만 하다. 아이들의 맑은 희망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