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에서 만난 고려인(14)
자빠로쟈 고려인 협회장을 만나기 위해 필자는 키예프를 찾았을 때 그의 연락처를 수소문했다. 어렵게 자빠로쟈 고려인 협회장인 텐베체슬라브(51세)씨의 연락처를 알았고 예빠토리야로 돌아오는 길을 택해 자빠로쟈를 찾았다. 키예프에서 출발할 때 연락을 취해서 자빠로쟈 역에는 밤 11시 15분에 도착했다. 이미 역에 와서 기다리고 있던 텐베체슬라브 씨와 그의 아들 텐지마(22세)와 그의 여친인 우크라이나 여성 이리나도 함께였다.
생면부지인 그들과 역 플랫 홈에서 만나 간단한 인사를 나누었다. 역 앞에 주차장에서 모두 함께 협회장의 집으로 향할 것을 예상했다. 그러나 고려인협회장의 아들과 그의 여친은 다른 곳으로 향하고 텐베체슬라브 씨는 필자만 호텔로 안내해주었다. 시간이 늦어 반가움을 뒤로 하고 다음날 만날 것을 기약하고 작별했다. 다음 날 아침 8시가 조금 지나 그가 호텔을 찾아왔다. 다른 곳으로 이동하자고 해서 짐을 그의 승용차에 옮겨 실었다. 그리고 곧 객실료 지불을 위해 카운터를 찾았을 때 이미 방값을 치렀다고 했다.
고맙다는 인사를 전한 다음이다. 텐베체슬라브 씨는 어디로 가느냐는 질문에 그의 장모님 댁으로 간다고 했다. 그는 우크라이나인 여성 이리나와 결혼하여 독자 아들 천드미트리를 두었다. 필자는 영문 모르고 그의 안내를 따랐다. 우크라이나인 장모님 댁으로 필자를 안내한 후 짐을 맡겼다. 그리고 곧장 그의 회사로 출근길을 재촉했다. 그는 매우 규모 있는 자동차수리공업사(Авторемонций завод)의 사장이었다. 출근길에 자빠로쟈 거리를 소개하다 가끔씩 엔지니어로서의 자부심을 나타내고 대우자동차에 대해 이야기하던 이유를 알게 되는 순간이었다.
그는 엔지니어로서의 자부심이 대단했다. 대우자동차가 자빠로쟈에서 철수한 후 그의 사업에도 타격이 컸던 듯하다. 공장에 많은 직원들이 움직이던 옛날을 회상하며 대우자동차의 부품을 우크라이나에 가져올 수 있는지 여부를 물었지만 필자로서는 답변할 근거도 아는 바도 없어 안타까웠다. 그의 공장을 들어서서 차를 주차한 후 곧 사무실을 향했다. 사무실은 커다란 공장 건물의 한 귀퉁이에 여러 개의 독립된 공간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가장 먼저 눈길을 끈 것은 태극문양이 선명한 스티커가 붙어있는 컴퓨터들이었다. 아마도 한국에서 중고 컴퓨터를 지원받은 듯했다. 사무실 벽과 책상 위에도 한국에서 만들어진 달력과 다이어리 등이 있었다.
필자는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안내를 시작하는 텐베체슬라브 씨의 손에 이끌리다시피 공장 구석구석을 살펴볼 수 있었다. 정말 규모 있는 공장이었음을 실감하게 했다. 어느 정도 큰 규모가 아니면 각종 절삭기와 공작(선반)기계들이 갖추기 힘들다는 것은 전문적인 식견이 없어도 알 수 있는 일이다. 군데군데 과거에 얼마나 많은 일꾼들이 일을 했을지 짐작하게 하는 공장 설비들이 지금은 멈추어 있었다. 엔진을 매달아 놓고 수리 중인 장면도 있었고, 커다란 농기계를 수리중인 장면도 볼 수 있었다. 다른 한쪽에서는 주택에 쓰는 외부 장식용 벽돌 타일을 생산하고 있었다.
모래가 쌓여있는 곳이 있는가 하면 철사처럼 뒤엉켜 있는 쇳밥이 수북이 쌓여있기도 했다. 30여분 공장을 둘러본 후 그제야 사무실에 앉아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다. 만남 이후 몇 시간이 흘렀다. 처음 대면하는 마음으로 사무실 책상에 앉아 그가 준비하는 커피를 마실 생각을 하며 기다리고 있다. 낯설지만 그는 분명 먼 이방인인 필자를 위해 부산한 아침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그는 낯선 여느 고려인들보다 더욱 낯설게 느껴진다. 그의 눈빛은 파란 이방인의 눈빛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커피 잔을 들고 앉아 이야기를 나누며 그 이유를 알게 된다. 그의 아버지 정인영(1928~1996년)은 우크라이나인 여성 스베뜰라나(1932~1998년)와 결혼해서 텐베체슬라브 씨를 낳았다고 한다. 독자인 그는 또 우크라이나인 여성 이리나(1962년~)와 결혼해서 아들 정드미트리(애칭:지마)를 낳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의 여친도 우크라이나인 여성이고 그의 어머니와 이름도 같은 이리나다. 그러니까 3대가 연이어 우크라이나 여성과 결혼하였거나 곧 결혼할 예정인 예비부부인 셈이다.
필자는 그의 가족사를 살펴보며 우리가 생각하는 범주의 민족에 대해 이해가 달리되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고민하게 되었다. 필자는 예빠토리야에 부임한 후 많은 고려인을 만났다. 그중에는 고려인과 고려인 그러니까 한민족끼리 결혼해서 가정을 이루고 살면서도 민족에 대해 특별한 애착이 없이 사는 사람도 보았다. 그러나 텐베체슬라브 씨처럼 3대가 혼혈가정을 이루어가면서도 민족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갖은 노력을 기울이는 이를 접하게 된 것이다.
사실 8년 전 일본의 동경에서 만난 한 조선족 생각도 난다. 그는 일본제철에 다니는 잘나가는 회사원이다. 그는 중국에서 같은 동족끼리 결혼해서 아들을 낳았다. 그런데 술자리에서 그는 주저없이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여지없이 중국인으로 아들을 키우는 수밖에 없다는 말이었다. 오늘 우리는 그 누구랄 것도 없이 쉽게 조선족과 고려인 등에 대해 말해 버린다. 그들이 처한 현실적 상황에 대한 이해는 외면하고 그들을 나무라는 사례도 많다. 이제 한 단계 깊은 고민을 하며 내 동족의 삶의 전망에 대해 고민하는 노력이 필요할 때란 생각이다.
동포로서 한민족은 그 어느 구성체보다 분명한 민족의 정체성, 민족의 범주를 형성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변화하는 환경에 대응하지 못하고 과거의 단조로운 관점에 머물고 있다. 이제 변화하는 환경에 맞는 다양한 관점으로 민족 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발전적인 모델을 찾아가야하는 시점에 와 있는 듯하다. 멈추지 않는 고민을 안고 자빠로쟈 고려인과의 만남은 계속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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