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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세상/내가 쓰는 시

우크라이나 고려인에게 바치는 최초의 한국인 시집

by 김형효 2011. 1. 24.

 

김형효 제4시집 <어느 겨울밤 이야기> 한국어, 러시아어판 출간

 

본인 시집 출간 소식을 어찌볼지 걱정이 앞선다. 우리네 문화가 자기 자랑삼는 일을 불편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은 나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가 읽히길 바라는 마음이다. 저자의 시집에 직접 책소개를 쓰는 데 대해 독자들의 이해가 있으시기 바란다. - 기자말

 

  
시집 <어느 겨울밤 이야기, 오늘의 문학사 간> 표지다. 한국어와 러시아어 번역본을 함께 묶은 시집이다.
ⓒ 김형효
시집 <어느 겨울밤 이야기>

 

필자는 시를 쓸 때마다 반성문을 쓰는 느낌이다. 세상에 첫 발을 딛던 16세 청소년기부터 지금껏 불화 속에 살고 있다. 철들지 못한 미숙아나 다름이 없는 것이다. 태생적으로 세상과의 불화를 뛰어넘는 운명의 요구가 있었을까?

 

필자를 시인의 길로 이끌어주신 김규동 선생님께서는 기회 있을 때마다 말씀하셨다. "남이 가지 않은 길을 가라! 시인은 발명가 에디슨이어야 한다." 사실 나는 그 말씀을 감당하기 힘들었다. 선생님은 내게 가혹한 채찍을 휘두르는 노구의 시인이었다. 그러면서도 그 말씀은 거역할 수 없었고, 내게 깊은 공감 속에 각인되었다. 그 후 어느 곳에 있더라도 그 말을 기억 속에서 지울 수 없었다.

 

이번 시집 <어느 겨울밤 이야기> 표지 글에서도 선생님께서는 세상과 싸움질하는 필자의 모습을 안타까워 하셨다. 불화가 사라지면 내 존재 의미조차 없어질 것처럼 난 불화를 즐기나보다. 그러니 나를 형성해 온 주변 사람의 고생이 많을 듯하다. 난 항상 지인들에게 감사한다. 그래서 여전히 내가 겪는 현실의 불화를 이겨내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숱한 노동 현장을 경험하며 살아왔다. 그러나 한두 사람 근무하는 열악한 사업장에서 사업주에 의해 일방 무시되어도 좋은 처지였다. 내 불화는 그런 현장에서 참고 인내하기보다 부딪혀 싸우는 것에서부터 시작됐다. 내 삶의 징검다리가 생겼다. 그것은 문학이었다. 시를 읽고 쓰는 과정 속에서다. 시를 쓰며 분을 삭이고 명상의 경험도 가졌다.

 

모자람을 인식해가는 과정은 더 많은 지적호기심으로 발전해온 듯하다. 그것은 다방면적이었다. 역사, 문화, 정치, 경제적 흐름에 이르기까지..., 그러나 그러면 그럴수록 또 다른 불화도 보게 되었다. 지금도 그 커가는 불화는 멈추지 않고 있다. 끈질김을 통해 이룬 성과에 대해 박수를 보내는 세상이다. 그러나 세상은 끈질기게 부딪히는 사람에게 자중을 청하기도 한다. 오늘 나는 우크라이나의 겨울밤을 맞고 있다.

 

  
▲ 세크첸코 대학내 한국어 관련 전시대 맨 아래 왼편에 한국 시인으로 최초의 번역시집인 김소월 시집이 보인다. 그리고 우크라이나 문학서 등이 한국어로 번역된 책들도 진열되어 있다.
ⓒ 김형효
세크첸코 대학내 한국어 관련 전시대

 

 

필자가 처음 우크라이나를 찾은 것은 지난 2009년 3월 4일이다. 그때만 해도 이곳에 공식적으로 3만5천여 명에 이르는 고려인들이 살고 있다는 사실은 전혀 알지 못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한국문학평화포럼 이승철 시인의 부탁이 있었다. 우크라이나에 사는 고려인 시인을 찾아보라는 것이었다.

 

사실 부탁이 아니라도 의미있는 일이란 생각에 곧 수소문을 시작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고려인 시인은 없다고 했다. 그 사실은 최종적으로 우크라이나 키예프 외국어대학교 한국어 학과장으로 계신 고려인협회장이신 강정식 교수님을 통해 확인했다.

 

 

  천년의 명상 1

 

오늘 아침은 한 걸음을 걸었다.

천 년 전에 나의 할아버지 한 분이 그렇게 걸었으리라!

이천 년 전, 삼천 년 전, 아니 그보다 더 오래된 오천 년 전에도

나의 할머니께서 후손들을 위해

정화수를 떠놓고 기도하다 걸음 걸었던 한 걸음이리라!

 

내가 한 걸음을 옮겼더니

저만치 하늘도 한 걸음 물러서면서 꼭 나를 안아주었다.

아마 저만치 천년 세월 이천 년 세월 이전에

나의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동행하시는 것 같다.

나의 등 뒤로 구름 한 점과 하늘이 한 걸음 물러섰다.

 

사람은 날마다 저 하늘을 우러러보고

한 걸음 한 걸음 삶의 길을 내딛는다.

저 무리지은 새들처럼

사람들도 그렇게 무리를 지어 살아가고 있다.

 

나무들이 나에게로 다가온다.

내가 한 걸음 앞으로 걸어 나갈 때

꽃들이 나에게로 다가온다.

내가 한 걸음 앞으로 걸어 나갈 때

 

한 걸음씩만 두 걸음씩만

걸음만큼 씩만 그렇게 걸음만큼 씩만

다가오고 멀어지는 진리에 가닿으면서 살아갈 수 있다면

아마도 하늘아래 세상은 평화로우리!

 

나는 나의 걸음만큼 씩만 곧게 살아가리.

나는 나의 걸음만큼 씩만 바라고 보리.

 

저 하늘아래 저 하늘 후에

나의 할아버지, 나의 할머니가

이천 년 전에도 삼천 년 전에도 바라보았던

그 눈빛을 기억하고 있을 하늘!

그 하늘이 내 어진 마음까지 들여다 볼 것이니

그 할머니, 할아버지가 보아온 하늘이

나를 보고 있을 것이니

나의 눈빛을 저 새들도 느끼리.

내가 보듯

그 때의 할아버지도 할머니도

저 새떼들을 보고 있으리.

저 새떼들을 보는 내 눈빛을 보고 있으리.

 

천년의 명상1 전문, 시집 <어느 겨울밤 이야기>중에서

 

 

 

▲ 세브첸코 대학 한국어학과장 김석원 교수(오른쪽)와 필자(왼쪽) 우크라이나에 간 후 처음 만났을 때 세브첸코 대학 인문대학교에서 한국어학과장 김석원 교수(오른쪽)와 필자(왼쪽)
ⓒ 김형효
세브첸코 대학 한국어학과장 김석원 교수(오른쪽

 

 

 

이를 계기로 고려인들이 우리의 정서를 이해하고 소통할 수 있는 시를 읽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필자는 곧 키예프 세브첸코 국립대학교 한국어 학과장으로 재직중인 김석원 교수님께 시집 출간과 관련한 번역이 가능한지 문의했다. 선뜻 동의가 있었고 곧 키예프 세브첸코 대학교에서 출간하는 일에 협력할 의사도 피력했다. 번역이 끝나고 시간이 흐르며 편집문제 등 다른 사정들로 인해 세브첸코 대학교에서 출간하는 일은 무산되었다.

 

아무튼 고려인들에게 바친다는 마음으로 시작된 출판이 이번 한국에서 출간되어 결실을 보게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안타까운 것은 이들이 우리말로 글을 다 읽어내지 못하기에 러시아어로 번역해서 선물한다는 점이다. 곧 한국어, 러시아어 번역 시집 <어느 겨울밤 이야기>를 받으면 이곳 고려인 협회에 전달할 생각이다. 아무튼 필자의 이번 시집이 우크라이나 고려인들이 받아든 최초의 한국인 시인의 러시아어 번역본 시집이란 사실은 필자에게는 영광스러운 일이지만 사실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우리의 번역문학이 동포들에게도 적극적인 관심을 기울여야할 영역이란 사실을 실감한다.

필자는 이곳에서 지내며 알게 된 우크라이나 역사와 문화에 대해, 또 이곳의 고려인에게 바치는 몇 편의 시를 실었다. 필자의 눈길로 본 역사와 문화, 조국, 민족 등에 대한 시편들을 포함해 시집은 총 5부로 구성되었다.

 

  
▲ 예빠토리야 한글학교 개소식 2009년 9월 5일 예빠토리야 한글학교 입학식날이다. 입학하는 학생들과 처음 만나는 날 붓글씨를 써서 모두에게 선물로 전했다.
ⓒ 김형효
예빠토리야 한글학교 개소식

 

 

  
▲ 2010년 고려인문화축제에서 공연중인 고려인 2010년 고려인문화축제에 고려인으로 구성된 도라지 무용단이 공연이 끝난 후 밝게 웃고 있다.
ⓒ 김형효
2010년 고려인문화축제에서 공연중인 고려인

 

 

 

어린 시절 어물 장사를 나간 어머니를 기다리며 어린 동생들과 토방마루에서 어머니를 기다리며 눈물을 흘리던 기억이 더욱 선명하다. 왜일까? 그때 나는 어린 동생들의 어깨를 감싸주었지만, 위로가 되지를 못했던 것 같다. 지금에라도 그 동생들에게 위로가 되는 그런 글을 짓고 싶다. 그러나 아직이다. 내가 나를 온전히 위로하지 못한 채 누군들 위로할 수 있을까? 안타까운 일이다. 내 자신에 대한 측은지심에 젖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것을 다행으로 여기며 내일에 기대를 건다.

 

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별 수 없다는 나의 말은 절망도 좌절도 아닌 희망을 이야기하는 나만의 말법이다. 포기하거나 체념하기에는 삶이 너무 아깝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너무나도 소중한 가족 그리고 선생님들과 벗, 지인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살아있는 한 날마다 발전하고 날마다 희망이란 믿음으로 또 한 걸음 딛기로 한 것이다.

 

어설프더라도 힘차게, 시집 <어느 겨울밤 이야기>의 사연도 가슴에 품고 그 사연이 내 삶의 향기를 필 때까지.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해피수원뉴스에도 게재합니다. 어려운 시기에 시집이 출간되도록 힘써주신 출판사 관계자분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표지 글을 주신 김규동 선생님과 연변대 조선어문학부 석화 시인, 작품을 꼼꼼히 읽어주시고 해설을 써주신 민영 선생님께 고마운 인사를 전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