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그릴라(SHANG RI-LA)의 땅, 네팔에서(38)
어린 임금(?) 로한이 기자를 잘 따르는 덕으로 머니라이 일가와 더욱 친근한 관계가 되었다. 덕분에 어린 임금의 소변을 여러 차례 선물로 받아내기도 했다. 그리고 한 동안 머니라이 집에 머물렀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일터에 가시고......, 저희들만 있어요. 아마 80년대 쯤 이야기다. 그러나 요즘 한국의 가정에는 개나 집고양이만 집을 지키고 있다. 사람이 머물러야 할 시간에 사람은 비었다. 그런 집의 집값은 천정부지 서민의 삶을 도륙 내는 듯하다. 천천히 가자는 슬로건, 비움, 혹은 느림은 유행어일뿐 극소수의 실천하는 삶 말고는 낯선 이야기다.
배반할 믿음을 갖지 않아도 되는 사람은 얼마나 행복한가? 설령 내가 배반당한다해도 그닥 배반한 사람에게 보탬이 될 무언가가 없다는, 나의 모자람이 탓이 될 뿐이다. 이제 나는 한국에서 나를 찾아온 귀한 인연과의 시간을 네팔의 화가 비케이와 함께하기 위해 부처님을 찾아 길을 재촉한다. 경비행기 안에는 23명이 함께 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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