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겨울 들어 가장 추운 날이었던 듯하다.
12월 말일, 숫자 게산에 밝지 않은 나지만,
31일이 주는 의미에 젖어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군중 속에 사람임을 자임하는 일 같다.
어제와 오늘이 무엇이 그리 다르랴!
어제에 삶과 오늘의 삶의 공간이 달라진 것이 없다.
그것은 누구도 부인 못할 분명한 사실이다.
그런데 나도 그렇고 다른 이들도 그렇다.
이름 모를 기억속에 사람에게서 새해 인사를 받기도 하고
나도 그렇게 200여명에게 문자메시지를 전송하였다.
그 중 150여명에게서 답신을 받는 것도 즐거운 일이다.
어떤 이는 독일에서 어떤 이는 만주벌판에서 메시지를 받고
어떤 이는 주점에서 어떤 이는 안방에서 어떤 이는 또 어디에서 받았을까?
나는 해마다 나만의 축제를 즐기는 습성이 익숙하다.
물론 동행이 있거나, 함께할 이가 있다면 응당 함께한다.
그러나, 부러 그런 시간을 만들기 위해 안달복달하지는 않는다.
아무튼 이번에는 수원에서 머물게 되었고,
이방의 여행자가 여행지에서 의미를 찾는 것은 당연한 일,
지금도 진행 중인 드라마 이산의 주인공이기도 한
정조 대왕이 축조한 수원 화성을 찾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 되겠다.
화성에서
2007년 12월 31일
나는 정조 대왕이 되어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화성 바깥의 순라꾼이 되어 담 넘어로 기어들었다.
몸도 바깥 눈도 바깥인데,
나의 긴 그림자만 담 넘어 210여년 전의 세월을 기웃거린다.
사람들은 숨죽이고
집 밖에서 집 안에서
한 해를 마감한다는 미명 속에 묻히는 날이다.
더러는 아직도 넘기지 못한
생명부지의 업을 쌓느라 바쁘고
나그네는 쓸쓸히 210여년 전의 세월 속에서 나온 혼령이 되어
화성 밑을 산책하고 있다.
날선 바람과 억새꽃이 조화롭고
담벽을 비추는 조명 떨어져 날리는 낙엽은
장엄한 서사극의 리듬을 연주하고 있다.
을씨년스럽다 하기에는 너무나 서사적인 장면
날선 바람 마른 낙엽도
210여년 전의 세월을 뛰쳐나온 대왕과
동행도 없는 스산한 산책길에 고독을 대하고 있다.
그렇게 나그네였다가
스산한 산책길 고독한 대왕이었다가
빈 화성을 지키는 순라꾼이었다가
2007년을 자각하며 추위에 움츠리는 모습까지
모두 쓸어갈 것 같은 날선 바람까지 동행인 날
마지막 날이 아니라
지속되는 날의 한 귀퉁이 같은 날이다.
그렇게 날선 바람에 날 맡기고
어디론가 또 떠나가야할 세월이 오고 있다.
바람이 길을 열고 오는 것처럼
세월이 숫자등을 밝히고 오는 것처럼
우리네 검은 머리카락에 흰꽃이 소곤소곤 피어나는 것처럼
그렇게 오고 있다.
가는 세월 아쉬워하고 한탄하며 오는 세월 기뻐말라
가는 세월이나
오는 세월이나
그 세월이 그 세월인 것을,
오늘의 불행은 없다.
살아있는 한
오늘은 절망은 없다.
살아있는 한
어제 죽은 자도 있고
어제 절망한 자도 있다.
모두 행복하셨기를
모두 행복하시기를
행복한 영조 대왕은 없다.
행복한 정조 대왕은 없다.
그 사이
죽은 사도세자가 울고 있다.
업을 이루고 살고 볼 일이다.
그 업은 또 다른 업도 낳는 법
사도세자의 업은 아비에게 죽은 것이오.
아비되고 죽은 업이다.
'내가 사는 세상 > 나의 여행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신들의 땅 네팔, 카트만두 거리를 사색하다. (0) | 2008.02.04 |
---|---|
룡악산 식당-길림에 있는 북한 식당 (0) | 2008.01.29 |
일상스케치 3 (0) | 2007.11.19 |
일상스케치2......, (0) | 2007.11.15 |
일상스케치....., (0) | 2007.11.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