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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세상/나의 여행기

신들의 땅 네팔, 카트만두 거리를 사색하다.

by 김형효 2008. 2. 4.

우리가 네팔을 찾는 방법은 대개의 경우 항공편이다. 더러는 인도를 경유하여 버스편을 이용하거나 티벳을 경유한다.

티벳을 거칠 때는 �차를 이용하거나 드물게는 도보를 강행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사실은 대부분 �차를 이용한다. 2007년 3월 모항공사의 직항편이 개설되기까지는

방콕, 홍콩, 상해, 뉴델리를 경유해서 가는 것이 보통이었다.  

네팔을 처음 찾았을 때 강한 인상을 심어준 것은 히말라야도 네팔 사람도 아니었다.

비행기 창문 밖으로 보이는 네팔의 국토였다.

그 아름다움은 거대한 조형물과 같았다. 수많은 네팔 사람들이 공동 작업을 통해 얻어낸 거대한 조각품과 같은 것이었다. 

네팔(nepal)은 그 말 뜻 자체가 힌두교 성자를 칭하는 리시무니의 한 사람인 네(Ne)라는 사람의 이름과

보살핀다는 뜻의 빨뽀선이라고 하는 말에서 유래한 팔(Pal)이라는 말이 합쳐진 것이다. 

<신이 보살피는 땅>이 바로 네팔이라는 것이다.

내가 처음 네팔을 찾았을 때를 기억하는 나의 수첩에는 이런 기록이 있다.


맑은 날이다.

폐허의 땅, 고대의 유적을 찾아온 듯하다.

강줄기는 거대한 광야와 바다의 경계를 가르듯 뻗어있고,

고대의 땅, 마치 산성처럼 피라미드 구조로 쌓인 산과 들,

거대한 성전을 내려다보는 것처럼 엄숙해지는 땅,

켜켜이 쌓여있는 퇴적물처럼 오밀조밀한 하늘 밭, 하늘 논,

대지가 성전처럼 마치 거대한 밥그릇을 켜켜로 쌓아놓고

고대로부터 성대한 제사라도 지내고 있는 것처럼

거대한 밥그릇이 쌓여있는 모양의 산에 밭, 산에 논

맑은 구름사이로 비쳐지는 붉은 고대,

고대의 땅, 네팔!

2004년 6월 신성(神聖), 네팔! 
 
네팔 사람들은 신을 믿고 산다. 36개 소수 종족 문화가 찬란하다. 그래서 그들은 축제 속에 살고 축제 속에 죽는다고 할만큼

날마다 축제를 벌인다. 적어도 낯선 나그네의 눈길을 사로잡기에 충분한 일상이다.

마치 전국민이 잘 조직된 축제의 일꾼들처럼 축제에 동참한다.

하지만, 그들의 그런 모습 뒤에 서글픔 눈물방울이 맺혀 있다.

그 그림자를 보는 순간부터 나그네도 그들과 동화되면서 타국이 아닌 내 조국처럼 아니 내가 살아야할 땅,

혹은 살아가야할 땅인 것처럼 무언가 해야한다는 생각에 닿는다. 

카트만두 타멜거리는 우리네 인사동과 비교할만한 주요 관광지이다.

네팔을 찾은 대부분의 관광객이 타멜을 거치지 않고 가는 일은 없다.

그런 중심거리에 어느 날 어미소 한마리와 어린 송아지가 나타났다.

네팔 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우리가 알고 있듯 그들은 힌두교를 믿는다.

소를 숭배한다. 물론, 그외의 코끼리도 뱀도 주요한 숭배의 대상이다.

네팔을 찾으면서 알게 된 것이지만, 아무튼 그들의 신 그렇다고 다가가 절을 하거나 기도를 하지는 않는다.

그냥 신성시하는 것으로 이해하면 적절할 듯하다. 

종족간의 다른 이질적인 문화는 그들의 눈빛을 낯설게 한다.

강 건너 불보듯 바라보는 것이다. 처음 나그네는 모든 것이 다 네팔 사람의 것이었고 나중에도 그런 것이지만,

그 이면을 속속히 들여다보면서 뿌리깊은 반목과 질시와 불협화음도 도사리고 있음을 본다.

이미 너무 깊숙히 자리잡은 그런 이질감은 이방인의 기대와 달리 현대 문명적 요소들이

그들의 내면을 치고 들어가면서 완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가역성의 일반화를 통해 그들의 변화를 기대해보아야 하는 것인가?

덜 개화되었다는 것은, 덜 영글었다는 것인가? 그들을 바라보면서 그들의 신에 대해 생각한다.

철저하게 자기 중심적인 소승불교의 뿌리가 절대적인 신앙심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분명 초연한 선지자의 모습을 지키고 있다.

가능하지 않을 것 같은 모습을 보여주는 그들의 모습, 초연하다는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2년전 4월달에 민중혁명이 있었다. 그래서 270여년의 명맥을 이어온 네팔왕국은 몰락했다.

갸넨드라(Gyanendra Bir Bikram Shah Dev)는 지난 2006년 4월 국민에 의해 권좌에서 물러났다.

그들의 삶의 피폐 뒤에는 몰락한 왕의 파렴치가 있었고 그 왕 밑에 기생하던 부정한 정치인들이 있었다.

왕은 몰락했으나, 그 체제는 몰락한 것이 아니다. 포장지만 바뀌었다고 해야할 것이다.

거기에 네팔인들의 피로감을 벗어날 수 없는 정글이 있다. 

그들의 아픔을 보며 쓴 시이다. 

  비에 젖은 카트만두의 하소 


우기의 열대에는 사막도 청량하다.

오아시스처럼 청량한 거리의 공기를 마시며

이방인이 걸음을 옮겨 딛을 때마다

아픔도 비에 젖은 길을 서슴없이 따라 나선다.

무릎꿇은 아픔으로 거리를 헤매며

아픈 길도 잊고 생존을 위해

구걸을 멈추지 않는 
아! 사람이여.


그 앞에서 또 다른 젊음이

무릎을 꿇고 비에 젖은 아픔을 따라 길을 나선다.

왕궁과 그의 거리는 1분 거리도 아니다.

왕궁과 그의 거리는 10분 거리도 아니다.

그의 걸음 만큼 먼 거리에서

권력을 상실했다는 왕은

여전히 오아시스의 사냥군처럼

호화롭고 호화롭다.

 

아픔을 넘어 눈물의 빗방울이

흰 햇살을 받고

검은 빛 무지개를 따라

흰 산머리의 히말을 넘는다.


뚜욱, 뚜욱

꾸벅, 꾸벅

젖은 아스팔트 위에 슬픔의 피가 자란다.



낯선 나그네의 절박한 하소를 그들이 들어줄 리 만무하다. 
하지만, 어쩌랴! 나그네가 할 수 있는 일이 글 몇 줄로 자신을 달래는 길 뿐이니, 

히말은 <신의 거처>, <눈의 거처>라는 뜻을 갖고 있다.
라야는 줄기라는 뜻이다. 
히말이 줄기를 이루고 있다는 뜻이 히말라야인 것이다.

신의 거처가 줄지어 있는 히말라야! 
그 신성(神聖)의 땅을 오늘부터 낯선 나그네와 여행하기로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