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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걷기 여행/사가르마타:하늘바다everest를 걷

영혼의 바다를 걷다(12)

by 김형효 2009. 1. 27.

- 모든 여성은 어머니다.

 

 

어머니의 품을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은 없으리라!

그 어머니의 품을 기억 속에서 잠시 외면했다 하더라도

아마도 그것은 어른이 되면서 다른 방식으로 표출되며

또 다른 행동으로 아주 현실적으로 나타나는 것이라 믿는다.

(사가르마타 가는 길가 산장소녀(?)들, 그들은 언니 동생이다. 빨간 옷을 입은 이가 언니인데 그는 이미 애엄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많은 일들을 겪고

그 일은 다양한 양태의 희노애락을 가져다준다.

우리는 어쩌면 그 희노애락으로  

삶의 곳간을 채우며 살아가는 즐거움을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때때로 그 즐거움을 고통으로 알 때

따뜻한 어머니의 향기에 젖어들 그리움 같은 것들이

우리에게 여유로 다가오는 날,

그 날에는 집으로 향하게 되는 날, 그런 시간 속에서 산다.

(언제든 웃을 준비가 되어있는 히말의 여인들, 이미 문명 세계의 소식들은 일상으로 듣고 살지만

그들에게는 지금 살아가는 곳이 그들의 어머니의 땅이며 소중한 삶의 터전이다.)

 

나는 그런 모습을 히말 산중에서 보았다.

아니 그 슬픔도 고통도 없이 따스한 모성을 보았다.

그래서 감히 내가 모든 여성을 어머니라 규정하게 되는 것이다.

절망도 고통도 없이 살아가는

천상 무릉도원 같은 히말 산중의 모습을 잉태(孕胎)한 히말의 여인들!

그리고 그것을 세상에 내어 놓으면서도

그저 묵묵히 받아 안아주는 산중의 모성(母性)!

 

(기도하는 어머니! 뒤에 손을 모으고 섰는 이가 앞의 할머니의 딸이다.

그처럼 앞의 어머니는 지난날 뒷곁의 딸을 위해 손을 모았으리라!)

 

이제 이미 익숙해져버린 저 드넓은 대륙의 문명과

광기의 문명 세계를 그들도 알고 있다.

하지만 낯설은 듯 받아들이는 그들

이미 그들도 디지털로 대별되는 아날로그적 상황의 고단함을 알고 있다.

아무리 아둔한 히말 산중의 순박한 여인이라도 알만큼

우리 문명 세계의 광기는 치밀하게 계산된 침략자의 전술과 전략을 안고

히말 산중에까지 침투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여전히 인간이 아름다운 것은

자기가 태어난 텃밭을 사랑하고 지켜가고자 하는

복본(複本) 의식을 간직하며 살아가는 것이란 생각을 불현듯 떠올리게 한다.

 

(산골 가족과 지나는 마을 사람이 함께 웃는 얼굴이 오랫만에 만난 삼촌을 대하듯 반가웠다.)

 

어린 시절 가난에 내쫓기듯 고향의 재를 넘었던 사람들

하지만 그들이 언제나 품어줄 고향을 그리며 돌아갈 땅을 생각하는 것은

재를 넘던 어느 날엔가 어머니가 낯선 객지의 밤하늘의 안녕을 기원하며

정화수(井華水)를 떠놓고 기도하던 모성이 살아있는 곳을 알아챘기 때문일 것이다.

 

 

(마치 오랫만에 만나는 외할머니를 만나는 느낌이었다.)

 

그는 그래서 낯선 광기의 문명계에서도 당당히 살아내고 있고

최소한의 절제로 인간이 살아갈 미래를 생각하며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히말 산중 여인이 광기의 문명과 결탁하지 않는 한

어쩌면 인류에게 한 자락의 희망은 여전히

시효가 없는 희망으로 인간의 품을 모성처럼 지켜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