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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세상/나의 여행기

아! 건강한 나여, 너를 지켜라!

by 김형효 2009. 4. 15.

우크라이나 통신 9

- 아! 건강한 나여, 너를 지켜라!

 

하루는 <우크라이나에서 온 편지>라는 영화를 보았습니다. 한 번의 지방견학에서도 보았던 풍경이 참으로 장관이었습니다. 생로병사를 다 보게 될 듯한 길고 먼 대지! 씨앗을 뿌리고 그 씨앗이 열매를 거둘 때까지 그리고 다시 그 세월이 다시 반복되어도 끝나지 않을 듯한 대지의 세월! 사람은 무엇을 위해 걷는가? 뛰는가? 사람은 무엇을 위해 사는가? 절로 명상이 깊어지는 지평선이 아련하기만 했습니다.

지평선을 보면 정말 끝없는 사색의 길 같기도 하고 끝없는 인고의 세월같기도 합니다. 많은 대지가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는 우크라이나 서부의 대지! 달리는 차안에서 바라다보이는 지평선......,

 

그리고 멍청한 눈빛으로 사색에 잠겨보았습니다. 새삼스러운 사색입니다. 건강한 사람들이어, 우리는 얼마나 큰 축복을 안고 살아가고 있는가? 오가는 길에서 혹은 지하철에서 혹은 드라마에서 불편한 몸을 이끌고 오가는 사람들을 보면 참으로 안타깝다. 그러나 그것이 안타깝기만 해서 되겠는가? 내가 그들이 못 가진 건강으로 정신까지 건강하게 밝히며 살아가야 하는 아닌가?. 그것이 건강한 사람의 책무다. 그것은 자기 자신을 위해서도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다 하는 것입니다.

 

러시아어 현지어 수업은 오전 9시 30분에 시작해서 오후 4시 30분에 끝이 난다. 만 6시간을 한 과목만을 가지고 수업을 받는 것이다. 그것도 서툰 영어와 러시아어로 이해하고 배워야 하는 것이다. 이제는 익숙한 일이 되었지만 그래도 얼마나 다행인가 싶다. 어렵게 한 고비 고비를 넘듯 받아온 러시아어 수업이 이제 이틀 남았다. 사실 마지막 평가 시험을 빼면 오늘 하루가 남은 것이다.

러시아어 강사 중의 한 분인 율리야의 수업 도중 쉬는 시간에 사진 한 장의 휴식을 가졌다. 사진 한 장을 찍은 것도 달콤한 휴식이 될 정도로 지쳤다. 그러나 배움은 즐겁기만 하다.

 

고통스럽고 견디기 힘든 스트레스가 몰려올 때도 있다. 그래서 그것을 이겨낼 방법으로 이 지독한 행복을 고통으로 생각해서야 되는가? 반문하기 시작했다. 건강이 있으니 그 무엇이라도 즐겁게 하자. 그렇게 견뎌온 수업이 이제 제법 작문도 한다. 물론 단문이지만, 스스로 기특하다.

 

이제 내일 저녁 열차를 타고 임지로 OJT를 떠난다. 그러니까? 14시간20분여의 기차 여행을 하고 17일 오전 니꼴라예프에 도착한다. 난생 처음인 우크라이나에서 난생 처음인 또 다른 도시를 찾아가는 것이다. 나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내가 아는 사람도 아무도 없다. 그러나 나는 그곳에서 둥지를 틀어야 한다. 임시거처가 아닌 2년을 살아야 한다. 낯선 우크라이나의 대학생들에게 한국어 강의를 해야 한다. 현재 알기로 그들은 한 마디도 한국어를 모른다. 내가 하기에 따라서는 그 대학에 정규 한국어 과정을 신설할 수도 있다. 그러니 훌륭한 미션 수행자가 될 수도 있고 한국을 잘 알릴 수 있는 홍보 사절이 될 수도 있다.

 

아무튼 낯선 나라 낯선 도시의 사람들과의 호흡을 위해 2개월 보름의 연수를 마감하는 시점이다. 현지의 OJT도 그 연수의 연장이니 정확히 3개월여가 되는 것이다. 나는 스스로 다짐한다. 내가 가진 건강이란 자산을 활용해서 건강하게 인사하고 건강하게 악수하고 건강하게 웃고 건강하게 생활하며 그들에게 다가설 것을, 이제 나는 내가 선 그 모든 곳을 나의 고향이라 여기기로 했다. 며칠 전 나는 나의 일기장에 이런 낙서를 했다.

낯선 나라에서 만난 낯선 사람 니꼴라이 형님과 다정한 시간이다. 형님께서는 우크라이나의 전통 음식인 보르쉐를 만들어주셨다. 그동안 먹어본 보르쉐 중 최고의 맛을 보여주었다.

 

“지금 내가 가닿는 곳은 그 어느 곳이든 나의 고향! 누구든 오시라! 나의 형제여! 지인들이시어! 내가 굶주린들 따뜻한 밥 한 공기와 따스운 숭늉 한 그릇 내놓지 못하랴! 이 낯선 곳에서 나 말고도 낯선 곳으로 그 어느 곳인 줄도 모르고 떠난 사람들이 있을 테니, 나 그들의 가족을 형제처럼 모시고 내 안의 고향을 밝히리! 꿈길에도 잊힐 수 없는 기억들을......,”

 

물론 나는 이 낙서를 쓰며 나의 조각 같은 선생님들의 말씀을 기억했고 선배, 후배, 그리고 고행 동산과 바다와 벌판과 형님과 아우들을 떠올렸다. 그러나 나의 형제들은 지금 또 내 곁을 지키며 살아갈 사람들이다. 내가 그리움 속에 사람들을 그리워하며 그 마음을 이곳 사람들에게 건네주면 그 그리움을 또 이곳에 사는 사람들이 언제가 나의 형제와 나의 그리움들에게 인사하며 전할 것을 나는 믿는다. 낯설게 다가섰던 네팔과의 인연 속에서 그것을 확인했던 운 좋은 사람이다. 그리고 중국 땅의 낯선 곳에서 손 내밀었던 초면의 중국동포들도 그렇게 깊은 인연으로 맺어졌다.

 

나는 믿는다. 내가 건강한 자리에 건강하게 다가선다면 그 모든 것은 다 잘 되어 가리라는 것을, 한 과목을 가지고 이렇게 공부하다보니 몸도 지치고 마음도 지친다. 그러나 고마운 것은 나의 건강이다. 건강을 지키시고 건강한 자신에게 경배하고 싶을 정도로 나는 지금 행복하다. 아마도 이제 나는 봉사단원으로서 책무를 다하기 위해서도 건강하기만 해야한다.

지금 맺혀있는 것은 꽃몽울이 아닙니다. 꽃이 피어날 줄 알고 참 이상하게도 봄이 온다고 생각했습니다. 잎도 돋아나지 않고 꽃이 피나 싶었는데 저기서 잎이 피어나더군요. 그리고 그 잎이 자라며 가지가 그 자리에서 새순을 돋습니다. 신기한 현상이지요.

 

아! 건강한 나여, 너를 지켜라! 스스로 주문을 외고 싶다.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이시어 한국의 봄 동산의 꽃들처럼 환히 웃고 사세요. 여기는 아직도 추운 날처럼 시린 바람이 불어옵니다. 손끝에 잎이 돋듯 그렇게 나 여기 살아 있어! 라고 <생명포고!>라도 하는 듯이 잎이 돋는 모습은 꼭 꽃봉오리 같습니다. 추운 나라에 사는 나무들의 자기 생존법을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