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순간이 삶에서 가장 정의롭고 소중하며 자신에게 가장 정직할 수 있는 시간일까?
만끽하는 순간 고통이 있을 리는 없다. 그 고통이란 이름의 것들은 만끽하는 자에게 오는 것이 아니라, 만끽을 모르는 자에게 오는 것이라는 생각도 하게 된다. 물론 그것은 어디까지나 아마도! 라는 전제에서 생각해보는 일이다. 아무튼 사설이 긴 이야기는 나의 변죽이자 어쩌면 모처럼 찾아온 휴식을 만끽하려는 나의 변설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 자신도 그렇고 다른 분들도 한 번쯤 생각해보시길 바라는 마음에서 주절거려본다. 가혹을 아는 사람들에게 그리고 그 고통 속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원망과 저주가 내려질 이야기이기도 하니 조국의 하늘에 고통을 겪고 있는 많은 분들에게 할 이야기도 아닌 듯도 하다. 우리가 정치적으로 안정되고 누구나 인정하는 보편선이 통하는 구조라면 나의 이런 변설도 마음껏 수용해줄 것이라는 안타까운 생각도 한다.
나는 쉐브첸코라는 시인이 쓴 시에서 종교와 정치가 무모한 백성들을 속이고 억압했던 한 시절을 보았다. 그리고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생각하다 오버랩되는 장면들을 보았다. 아팠다. 그러나 어쩌랴! 이곳 우크라이나의 역사를 보면 한국의 광적인 종교인들은 어쩌면 민족을 팔거나 배반하는 길을 가며 민족보다 종교의 우월성에만 매몰되어 형제를 죽이는 우를 범해도 두렵지 않은 모습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사실 한국의 종교를 비방하자고 아래의 시를 인용하거나 이 글을 쓴 것은 아니다. 다만 우리가 냉정히 생가해보아야 할 부분이 분명 있는 것 같아서 독백처럼 그러나 신중하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내 조국의 몇몇의 뜻과 달라도 내가 갈 길은 가겠다는 마음이다. 그것이 보편선이라 여겨지는 일일 때 그렇다. 이제 얽매임이 아니라 공간적 한계에서 자유롭게 벗어나 그 아픔을 이겨낼 수 있는 길을 찾고 있다. 새로운 길을 열어보자는 마음으로 그런 위치에 섰다. 하지만 그것이 무엇인가 회피한다고 얻어지는 것과는 다르다고 믿는다. 그러니 떠난 곳을 기억하되 지금 길을 충실히 걷자. 언젠가는 하는 막연함이 아니라 지금의 충실한 한 걸음들이 훗날의 밝은 꿈이 열매 맺는 지름길이 되리라는 믿음으로 가자.
참 겁 없는 사색이다. 휴식을 이야기하려다 딴 길로 샜다. 부러운 대평원을 바라본 사람이 그 평원의 아름다움과 바라보기만 해도 얻어지는 사색을 이야기 하고 싶었다. 더구나 친절한 슬라브인 가족들과 샤슬릭(고깃덩어리를 쇠뭉치에 끼워 바비큐처럼 굽는 것)이라는 요리를 해먹으러 산책을 하고 숲에 갔던 시간은 특별한 휴식이었다. 흩어져 살던 가족이 만나 가족나들이를 한 기분이 들 정도로 포근했다. 그런 와중에도 길고 길게 뻗은 길을 보며 생각에 잠기고 끝없이 아득한 세월의 지평선을 보고 사색에 잠긴다. 그날 저녁에도 다음 날에도 집에서 기르는 사납게 생긴 개를 데리고 산책을 했다. 내게서 한국어를 배우겠다는 타샤(18세)와 비까(18세)가 함께 동행이 되어주었다. 노을이 깊어지면 지평선도 한없이 깊어지는 것인가? 길도 그 깊이를 안고 저무는 듯하다. 어쩌나? 직접 바라보지 않고서는 느낄 수 없는 이 고독과 사색의 안정감을 무어라 설명하고 표현해야 하나? 시인이라는 정체성에 걸맞지 않지만 나의 능력으로는 그 표현을 해낼 재간이 없다. 절망적이다. 다만 나 홀로 그걸 느끼고 있고 다듬어가고 있다. 반복하고 반복하며 사색을 하는 과정이라 이해해 주시길 부탁드린다.
연휴를 화려하고 즐겁게 보내고 연휴가 끝난 후 대학을 찾았다. 나의 협력자인 나탈리아는 첫날 만남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대신 영문과의 예카테리나 선생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그러나 그도 수업중이라서 교무실로 안내를 받아서 갔다. 그곳에 주임교수님인 이리나(Loshchenova lryna)선생이 친절히 맞아주었다. 그는 방마다 찾아다니며 여러 교수님들을 소개하고 기념 촬영까지 해주었다. 정말 낯선 대학의 불확실한 한 걸음을 걷는 사람에게는 큰 위안이 되는 시간이었다. 나는 그들에게 손잡고 악수하고 인사하는 순간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믿는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그들도 반갑게 웃음으로 호응해주었다. 그 말이 옳고 그르고 상관없이 나는 그것을 믿고 그렇게 되도록 최선을 다하며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가야 한다. 폴란드인에게(1847년) 쉐브첸코 우리 자유로운 코자크였을 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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