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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세상/내가 만난 세상 이야기

남과 북이 하나 되는 날, 압록강떼군 할아버지의 원한도 풀 수 있으리.

by 김형효 2009. 6. 23.

-북한의 시인들(17) 리찬 시인

 

남과 북이 갈렸다고 우리들의 말이 갈린 것은 아닐 진데,

북녘 할아버지의 시는 묻혀서 숨을 쉬지 못하고 있었다.

오늘 우리들이 호흡을 가다듬고 읽어가면서 북녘에서 살았던 할아버지 시인의 안부를 대신하자.

 

이 할아버지 시인이 이제는 살아계신 지, 돌아가셨는지, 소식을 알지 못하는 우리들이다.

할아버지 시인은 오늘날 우리가 꿈같이 그리는 통일을 원하는 것처럼

그 시절 꿈같은 광복을 맞았을 것이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우리에게 광복의 그날,

그날의 감격이 상처가 되어 아물지 못하고 있으니,

아! 시인의 아픔은 더욱 커져만 갔으리라.

시인 할아버지가 겪었던 민족의 비애를, 통한의 세월을 어찌할까?

 

압록강을 건너 저 거친 광야로 강제징용 길에 나섰던

우리들의 할아버지 춘삼이와 영길이의 안부를 묻던 할아버지는 안녕할까?

강제징용 끌려갔다가 피골이 상접한 채 돌아왔던 춘삼이와 영길이는 안녕할까?

아! 그 시절로 가고 싶다. 말하면 날 나무랄 사람 있나.

 

저 하나 된 모습,

저 詩 안에는 적어도 같은 민족이 남과 북으로 으르렁거리는 모습은 없다네.

보았으리. 이렇게 남도 없고 북도 없는 우리들에 것을,

이렇게 역사를 거슬러 뒷걸음 쳐보면 우리네 민족의 전망을 볼 수 있으리.

광복 이전의 시기의 역사를 찾아 뒷걸음을 쳐보면 알게 되리.

거기 아름다운 우리들의 모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며, 그것은 거스르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분명히 확인하는 것임도 알게 될 것이다. 내가 어디서 왔는가?

우리가 어디에서 흘러왔는가? 생각해보면 되리라.

 

하나인 우리들 모습이라네. 춘삼이는 저 남녘의 어느 하늘 아래 사람일까?

아니 영길이는 평안도 어느 산골 사람일까? 그렇게 우리가 아름다운 날,

하나로 서로의 어깨를 의지하던 그 시절이 그립다.

평화롭게 뗏목을 띄우며 함께 아팠던 일들에 함께 위로가 될 수 있는 그런 날이었으면,

함께 어깨를 감싸주는 그런 날이 이제는 왔으면, 압록강 떼꾼 할아버지가 광복을 학수고대했지만,

남과 북이 갈려서 다시 한이 맺혔을 테지만, 우리가 다시 하나 되는 그날 저 떼꾼 할아버지의 원한은 멈춰지련마는,

 

아래의 시는 일제 치하에서 쓴 시이다.

 

그대들을 보내고

리찬(1931년)

밤이 퍽은 깊었나보다

사방은 숨죽은 듯 고요해지고

창살에 서리였던 달 그림자도 거중 스러져 간다

 

춘삼아 영길아

그대들을 보내고

나는 여태 쪽한잠도 못 이루고 있단다

 

이리 뒤굴 저리 뒤굴 뒤굴만 치다가

푹 이불을 뒤여쓰고

무척 많이 셈도 세여 보았다만

참 정말 몰랐더라

그대들이 그렇게 될 줄은

그렇게까지 될 줄은

 

하냥 이글이글하던 눈물은 움푹 패이고

광대뼈 앙상한 볼

반이나 줄어 든 팔목

 

오 여섯 달하고 보름이나

모든 것을 단둘이 걷어 안고

치떨리는 그것들을 참고 견디고 뻗댄 그대들

 

하여 무거운 쇠고랑 철렁이며

언제라 돌아 올 날 기약 못 할 길

늙은 부모 외로이 남기고 가는 그대들이언만

한결같이 텁수룩한 머리 치켜 올리며

은근히 보이던 그 미소

말없는 그 미소 속에서도

그 한마디 부탁만은 똑똑히 들었다

 

안심하라 남은 우리

날을 잇는 샛바람 제아무리 거셀지라도

반드시 키우리니 이 도화댓벌에

그대들이 몸 바쳐 지킨 그 뿌리는

 

그것만이 우리가 가장 잘 감사하는 길이며

그 어떤 원호보다도 그대들을 기쁘게 할 게다

 

그렇게도 쇠악하고 헐벗은 몸

첩첩 산길에 차멀미나 한 나는지

이 맵잔 날씨에 손발이나 얼구지 않는지

오 물러 이름도 목매여 오는

두 동무

우리들의 춘삼아 영길아...

 

 

압록강 떼꾼의 노래

1934년

 

압록강 팔백리 흐르는 뗏목

뗏목에서 내 청춘 반나마 늙었네.

 

늙어진 내 청춘 어디 가 찾으리

물결아 말하라 어디 가 찾으리

 

청춘이야 늙던 말든 이 내 몸 오늘도

도도한 압록강 뗏목에 뜬 신세

 

칠백리 긴긴 굽이 돌고 또 돌며

한숨져도 눈물져도 뗏목에 뜬 신세

 

뗏목은 흘러 흘러 풀리는 날 있건만

이 가슴에 맺힌 원한 풀릴 날 그 언젠나

 

북만 광야에 해 기울어, 저녁 연기 자욱하니

아득한 고향 산천 더욱이나 그립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