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홀로 지내는 시간 동안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서 긍정적인 삶을 살아내기도 하고,
부정적으로 생을 마감하기도 하는 것 같다. 최근 홀로 지내는 생활이다 보니,
그런 점들을 더욱 주의 깊게 생각하게 되고, 요즘은 더욱 긴장감을 갖게 된다.
딱히 삶의 성공적인 모델이라는 것이 그려져 있는 것이기 때문은 아니다.
스스로 현재에 충실 하는 것이 가장 발전적인 모델이라고 생각하고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낯선 나라에 와서 삶의 소중한 하루하루를, 누구보다 충실하게 보내야 하는 것은,
내게는 의무감도 부여된 것이라는, 나름의 생각때문이기도 하다.
▲ 길가의 앵두(?), 체리(?) 길가에 수없이 많은 앵두 나무 같기도 체리 나무 같기도 한 과실수!
필자의 입맛에는 앵두 맛이 나는데 워낙 커다란 나무라서 선뜻 앵두나무라고는 못하겠고......, ⓒ 김형효 앵두인지, 체리인지...,
가까운 주변인에게 보여주는 모습도 그렇고,
조금 의미를 확장해서 보면 한국인으로서 이 자리,
이 도시에 필자와 같은 조건으로 와 있는 사람이 오직 한 사람이다.
그러니 누가 내게 의미부여를 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여기 사는 사람들에게는 한국을 대표하는 사람인 것이다.
또한 내가 어떻게 움직이고, 어떤 소식을 전하느냐에 따라서
후일 이곳을 혹시라도 찾을 한국인에게 좋은 길잡이가 될 수도 있고,
부정적인 길잡이 노릇을 하는 것이 될 수도 있겠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들에게는 한국인의 특성을 각인시키는 결과로 나타나게 될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두려움만으로 방안에 있지 않겠다고 다짐을 했다.
스스로에게 하는 다짐이고 누가 명하거나 부추긴 것은 아니다. 스스로 자각에 의한 것이다.
물론 요즘 나의 일상은 이곳에서 현재 강제된 임무가 없어서이기도 하지만,
연일 이어지는 모국의 불편스런 뉴스에 더욱 움츠러들고 불편해져서,
스스로 갇힌 부분도 있지만,
그 틈에도 무언가 색다른 소식은 전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먼저 며칠 동안 집 주변을 가볍게 산책했다.
영역표시를 하는 짐승들이 그렇게 주변을 먼저 인식하는 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시작을 위한 준비 운동처럼 우거진 숲길을 산책하는 데,
아는 사람도 없을 뿐 아니라, 산책길에 사람이 많지도 않다.
그러니 절로 명상에 잠길 만한 분위기는 갖추어진 셈이다.
그러나 그것은 자연적인 조건만 그렇다.
사실 낯선 곳에 사람이 많지 않고 우거진 숲이라는 것이 또한 두려움을 내재하고 있다.
어디선가 갑자기 훤칠한 이곳 청년들이 떼로 나타나지나 않을까? 언제나 긴장은 날 불편하게 한다.
그래서 선택한 알만한 아파트 인근의 산책길이다. 그래도 얼마나 큰 축복인가?
마음의 여유를 갖고 느긋한 일상을 보낸다는 것은,
▲ 오동나무가 길가에 즐비하다. 우리네 시골길에 드물게 있던 오동나무~!
요즘은 그 자취를 찾기도 힘든 나무들이 마치 옛 고향의 서정을 불러오기도 한다. ⓒ 김형효 오동나무 열매
산책길을 가다보면 앵두 같기도 하고, 체리 같기도 한 붉은 열매가 탐스럽게 열려있다.
어느 날 아파트 앞에 의자에 앉아 있던 할머니에게 먹어도 되는 것인가? 여쭈었다.
먹어도 된다는 말에 금방 따서 맛을 보았다. 영락없는 앵두 맛이다.
그런데 겉모양이 체리처럼 매끈하다. 그래서 오며 가며 그것들을 따 먹으며 산책을 한다.
어찌 보면 분명 앵두인데 그 나무의 크기가 아름드리라서 설마 앵두나무가 이리 컸을까 싶다.
우리네 시골길을 걷다 보면 담장 울타리 키를 하고 있는 많은 앵두나무에 익숙해서 인지도 모르겠다.
길가에 오동나무에는 무수히 많은 오동이 열렸고, 듬성듬성 아름드리 뽕나무에도 많은 열매가 익어가고 있었다.
한국 같으면 술을 잘 마시지 않는 나도 오가는 주변인들을 위해 술을 사다 담구었으리다.
욕심나게 많은 열매들이 나그네의 산책을 위로하는 느낌이 들어,
산책길 2~3일 후에는 조심스레 책가방에 카메라를 넣고 길을 나섰다.
▲ 도시 할머니, 시골 할머니! 인구 50만의 도시지만, 할머니 두 분은 항상 아파트 앞 의자에 앉아 아파트를 지키는 모습이
꼭 마을어귀에 앉아 오가는 이를 격려하던 고향 할머니만 같다. 왼편의 할머니는 80세, 가운데 할머니는 88세란다.
어린 소녀는 자폐를 앓고 있는 데 자주 보면서 밝은 표정을 짓는다. ⓒ 김형효 도시 할머니
물론 이런 좋은 모습을 내 나라에 소개하고 나중에 내 나라에 가서 이런 모델로 나무를 심고 싶다는 욕심이 생겨나서다.
지난번에 밝혔듯이 한국에 가면 꼭 나무를 많이 심고 싶다. 유럽 귀퉁이에 와서 커다란 아카시아 나무가 우거진 길을 걷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다. 더구나 아카시아 만발한 꽃길이라니, 거기다 오동에다 앵두 같은 열매를 따며 길을 걷는
다는 것은 상상도 하지 않았고, 그저 추위에 견디는 일이 가장 큰 일이 될 줄만 알았다.
그래서 세상은 아는 만큼 보인다고 그랬던가? 자유와 낭만이 앵두처럼 활기 넘치게 붉고,
그 무수히 많은 과수나무에 열매들처럼 결실이 되어 있는 것만 같은 도심은 또 어떤가?
우리보다 경제적으로 궁핍하다고 봉사단으로 와 있는 내 눈에 그들의 여유를 어찌 이해하란 말인가?
그 여유 중에 낯선 나그네의 망중한은 그들이 반겨주며, 한 마디 따뜻하게 건네주는 것만큼 달콤한 게 없다.
현지어를 배운다고 동영상 강의를 보고 듣지만, 실제 그들과 서투른 한마디를 건네면서 주고 받는 만큼 성취감은 없다.
그러니 사람은 사람속에서 배운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먼저 살아가신 분들 중에 추사 김정희 선생도, 다산 정약용 선생도, 수많은 선비들, 독립지사님들,
근세에 민주인사들이 귀양이나 감옥 생활 동안의 절치부심을 겪으며 내적인 힘을 키웠던 것이 사실이다.
그것은 비단 우리네의 역사적 기록만이 아니었다. 우크라이나의 대표적인 시인 쉐브첸코의 경우도 마찬가지였고,
세계적인 문호 뿌쉬킨도 이곳 근교의 망명지에서 주요한 작품들을 남겼다.
이 나라의 쉐브첸코는 특히 압제자 짜르의 통치에 대해서 우리가 염원하듯 민주주의를 부르짖었다.
그날은 오리라고, 그리고 방관적인 민중을 향해 훈령을 내리듯 메시지를 전했다.
지금 우리네 일상이 그런 형국은 아닌가? 모두 마음 모아 뜻 모아 염원하면 끝내 이루리라!
평일 오후에도 망중한을 즐기는 강변의 풍경은 또 어떤가? 다음 소식은 강변의 낭만을 소개하고자 한다.
오! 미련한 사람들아
쉐브첸코 (1860년)
오! 미련한 사람들아!
무엇 때문에 짜리가 필요한가?
무엇 때문에 사냥개가 필요한가?
그대들은 개가 아니고 사람이다.
나는 걷는다.
밤, 배고픔, 안개,
눈, 오한,
네바강 다리 밑으로
소리도 없이 얼음장이 떠내려간다.
그 눅눅한 밤
나는 네바 강 위를
기침하며 걷는다.
문득 바라보니
양처럼 순진한 처녀들
진창길을 걷는다.
그 뒤를 불구의 노인들이
다리를 절며 따라간다.
양떼를 몰고 가듯이
주여! 보소서!
이 세상 어디에 진리가
불쌍하구나. 불행이어라.
굶주린 고아들, 헐벗은 처녀들,
어미에게로 몰고가누나.
양떼를 몰듯이
마지막 의무를 다하라고
언젠가 심판의 날 오리니
언젠가 짜리의 머리 위로
징벌의 날 오리니
언제 민중을 위한 진리 올 것인가?
그날은 기어이 오리.
뜨거운 아침 해 떠오르리.
모든 악 불사르고
그 날은 이 땅에 오리.
**네바강은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는 큰 강이다.
**미련한 사람은 결국 국민이 아니라, 짜리요, 일제요, 박정희요, 전두환이었던 것이다.
죽어서도 과정이 있는 인간의 역사에서 힘의 논리는 결국은 무기력한 흔적을 남기고
역사에 남는다. 그 미련한 주인공은 다음에는 누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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