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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세상/내가 만난 세상 이야기

여유있는 자의 정성을 기대하는 것은 허망한 일인가?

by 김형효 2009. 6. 29.

서툰 러시아어, 그리고 인삿말 밖에 못하는 우크라이나 언어지만, 난 그들이 사는 곳에서 홀로 두 달 반을 살아냈다.

처음 와서 생활해 나가던 하루하루도 스스로 기특한 느낌이었지만, 그때와 지금은 정말 많이 달라졌다.

처음에 나는 길을 모르면 그냥 아는 길만 찾아갔다. 그러나 이제 나는 모르는 길이지만, 물어서 간다.

대화가 어렵지만, 묻는 자에게 함부로 대하지 않는 것은 세상 사람들 모두 같은 느낌인 듯하다.

 

히말라야 산길에서나 우리네 오솔길에서나 이곳의 낯선 길 위에서나 마찬가지다. 그러니 매번 반복하면서 느끼는 일이지만,

사람은 사람 속에서 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기에 세상의 무슨 일이든지 사람과 사람이 조화를 만들겠다는

강한 자신의 의지만 있다면 능히 조화를 이루며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그 어떤 계층과 영역 간에 일이라 하더라도 그렇다는 생각을 강하게 하게 된다.

 

 
▲ 니꼴라예프시 지도 가운데 하단의 긴 노란색 길이 레닌대로(ПРОСФЕТ ЛЕНИНА:prospect renina)이고
동그라미로 표시한 1번지가 수호믈린스키 대학교이다. 한 눈에 커다란 강이 지도에 나타나는 것을 알 수 있다.
마치 바다같이 넓은 강이다. 쁘로스펙트는 대로라는 뜻이다.
 

말이 달라 서로 통하지 않는 사람들조차, 그저 사람의 마음으로 눈을 뜨고,

사람에 대한 애정의 눈으로 느끼고 대화 이상의 소통이 가능하잖은가 말이다.

그러니 난 오늘날 한국 사회의 소통부재로 인해 겪고 있는  온갖 고통, 가혹한 시련의 시기를 보내는 것을 보면 무한히 안타깝다.

어쩔 때는 분노가 섞인 한숨을 쉬고 분통을 터트리게 된다. 그러다가 결국 그 대상들과 소통을 하고 살아야 하고,

그들과 살아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고 보면, 제발! 마음을 비우소서! 위정자들이여! 하고 간곡하고 간곡하게 소원을 빌듯 청하고 싶어진다.

 

아무렴, 말도 못 알아듣는 사람과도 통할 수 있고, 역사적으로 사회적으로, 살아온 조건은 다르다 해도 조화를 못 만들까 싶은 것이다.

그런데 가만가만 집중하고 뉴스를 보면, 소통의 부재에 원인은 눈에 보인다. 그들은 한쪽 편만 들거나, 한쪽 눈만 뜨고 있다.

다른 한쪽 편을 향해서 귀를 열고 또 다른 한쪽 편을 향해서는 들려오는 소리조차 애써 닫아버린다. 그러니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 우크라이나 나미브(намив вуг)에서

흰 티셔츠 입은 젊은 친구(아밀:Amil)는 아제르바이잔에서 와서 강변에 레스토랑을 하는 사장,

오른편 여성은 레스토랑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주부(Marina)~! 잠깐이지만,

그 나라 시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맥주 한 병을 나누며 곧 친해졌다.

다른 친구들은 손님인데 함께 대화를 나누며 어우러졌다.

 

낯선 나라, 낯선 길을 다니며 그 나라 사람들과 그 도시에 사람들이 겪었던 역사를 알게 된다는 것은 많은 기쁨을 준다.

그리고 스스로 그들과의 친밀감을 느끼게 된다. 그들이 날 인정하고 안하고를 떠나 내가 인식하는 것만큼,

내 스스로 그들과의 친밀감은 더 강하게 느끼게 되는 것 같다.

 

그런 마음은 차츰 그들에 대한 두려움을 교육받았던 내게는 그들에 대한 두려움을 지우게 하는 효과로 변화하는 것 같다.

그것은 다시 그들을 대하는 태도에 있어 자신감을 준다. 그리고 그들을 웃고 대할 수 있는 여유도 준다. 그래서 서툰 말에 자신감을 갖고 움직였다.

 

버스를 타고 한달 전쯤 학생 집에 초대를 받아갔던 기억을 더듬어 갔다. 그리고 오픈된 레스토랑에서 작은 맥주 한 병을 주문한 후,

그 레스토랑 사장과 대화를 나누었다. 그리고 곧 친해질 수 있었다. 젊음은 경계심도 있지만, 배타적이지 않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실감했다.

어린 아이들이 귀엽고 친절한 것처럼 젊음 또한 여유롭고 배타적이지 않다. 그래서 난 그들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질 수 있었다. 오래된 친구처럼,  

 

 ▲ 크리스티샤 크리스티샤는 레스토랑에서 파트타 하고 있지만, 보통의 우크라이나 젊은이들처럼 한결 같이 밝다.

사진 찍는 것을 많이 꺼리다가 다른 친구들이 어우러지는 것을 보고 나중에 자신도 찍어달라고 청을 하기도 했다.

 

말이 통하고 안통하고 알아듣고 못 알아듣고를 떠나, 낯선 나라, 낯선 길에서 만난 사람들의 공통점은 서로 정성을 다해 묻고,

서로 정성을 다해 듣는다는 공통점이 있다. 서로 정성을 다하며 들으려 하고 서로 정성을 다하여 일러주려고 한다.

거기에서 누군가 못 알아듣는 다고 힐난을 한다면 그 길은 얼마나 외롭고 쓸쓸한, 고독하고 처량한 거리가 되겠는가?

 

그러나 낯선 이방인을 향해 그 누구도 그런 시선으로 대하지 않는다. 만약 그리 대한다면 그 자체가 폭력이다.

그런데 서로 같은 말을 쓰고 같은 말을 하면서 서로 다른 해석을 하고 정성을 외면하고 가난한 자에게 더 많은 것을 양보하라 하고,

가진 자들이 더 많이 갖겠다고 으르렁대는 꼴이라니, 차마 눈 뜨고 못 볼 잔혹상이 아닌가?

제발, 조금만 비우고 가난한 자의 위치에서 바라보고 설득하는 눈높이를 갖고 먼저 가진 자, 먼저 앞선 자,

더 많이 가진 자들이 아량을 베푸는 미덕을 살리길 바란다.

 

아니 정 그게 어렵거든 그냥 현상유지의 시간을 갖고 천천히, 천천히 어려운 조건들을 개선하려는 노력을 보여주길 바란다.

일거에 삽시간에 뭘 해결하려드는 그것이 덜 가진 사람, 여러 가지 어려운 조건에 사람들에게는 가혹한 살인행위일 수도 있는 것이다.

▲ 우크라이나 니꼴라예프 나미브(намив)에서 본 석양! 날이 저물면 오가는 길이 두렵다. 그것은 경험해서가 아니라,

교육받은 내용이다. 난 우크라이나 니꼴라예프 강변 레스토랑에서 사귄 젊은 친구들 덕분에

해지는 저녁 9시에 처음으로 강변으로 저무는 노을을 카메라에 닮아낼 수 있었다.

 

이것은 반면사고에서 오는 나의 낯선 나라 체험을 통해 전하는 이야기다. 세상사는 앞뒤, 좌우로 다 무관한 일이 없다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하는 것이다.

막막한 낯선 나라의 나날들이 날 개선시키는 것은 나의 의지도 있지만, 생전 처음 보는 낯선 나라 대한민국 사람을 정성으로 대해주는 그들 덕도 있는 것이다.

 얼굴 생김이 비슷하다고 반가운 중국인들이 있었다. 대형마트에서 눈을 힐끔하다 그냥 지나치려는 것을 어디서 왔느냐?(총깡라이더?)고 물었다.

 

사실 정확한 말은 아닌 듯하다. 그랬더니 날 보고 중국인(중구어런)이냐고 되묻는다. 아니, 난 한국인이다.(부스, 워스 한구어런)고 말을 나눈 것이 전부다.

그들은 인사를 나눈 후 저만치 앞서가며, 한참을 내게 손짓을 하며 웃음을 주고 간다.

사람의 만남에는 이렇게 조그만 익숙함을 가지고도, 고맙고 반가운 것들이 있는 것이다. 함께 살아야할 내 나라에서 일어나는 소통 부재를 보며 한숨이 깊다.

거센 폭풍 같은 밤을 새우고 있을 평택의 노동자와 그 가족들을 생각하며 잠 못 드는 나는 다시 한 번 제발 상생의 길을 향해 여유 있는 자들의 정성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