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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세상/내가 만난 세상 이야기

넓은 강줄기가 나라 전체를 풍요롭게 흐르는 나라

by 김형효 2009. 7. 1.

쨍쨍한 햇볕이 드는 오후다. 한국 같으면 오후 2시의 태양처럼 빛이 뜨겁고 햇살이 쨍쨍하기만 하다. 거리에는 온통 녹음이 우거져 있어 눈길을 줄 때마다 눈이 시원하고 맑게 트이는 느낌이다. 하지만 푸르게 우거진 녹음을 즐기는 사람들은 많아 보이지 않는다.

 

4차선 도로의 한 가운데 나무가 심겨져 있다. 훤칠하게 자란 나무들 사이 산책길에는 차선만큼 넓게 숲길이 조성되어 있다. 숲 가운데로 사람들이 다니는 길이 훤하게 뚫려 있다. 깊은 사색의 길고 긴 여운이 잠겨들 것처럼 멋진 길이다. 10분~20분 거리를 버스를 타고 가도 먼 여행길을 떠나는 느낌에 마치 즐거운 드라이브 길을 달리는 느낌이다.

 

▲ 강변의 가족들 나미브 강변에서 휴식을 즐기는 가족들이다. 나중에 어떤 사인가 물었더니 두 어머니는 친구 사이고 각각의 아이들을 데리고 왔단다.

 

마음이 답답할 때 가끔씩 바라보던 남강을 찾았다. 그러다가 최근에는 남강(ЮЖНЫЙ ЬУГ, South river)에서 길게 이어지는 나미브(НАМИВ)를 찾았다. 물론 남강에도 많은 사람들이 망중한을 즐기고 있다. 그런데 남강에는 강변의 레스토랑이나 휴게 시설은 없다. 나미브에는 강폭이 넓은 강에 강 건너에는 아담한 우크라이나의 낮은 집들이 멋들어지다.

 

▲ 남강 나미브의 갈대숲길 남강 줄기의 나미브 지역에는 긴 갈대숲이 우거져 있었다.

갈대숲 사이 사이에 낚시를 드리운 강태공들이 많았다.

▲ 나미브 강 건너 나미브 강 건너편에도 강태공들이 늘어서 있다.

 

젊은이나 나이든 사람들이나 어린이들도 마찬가지로 즐거운 오후를 즐기는 모습은 무한히 부럽기만 하다. 강물이 일렁이는 모습을 한참 동안 바라보고 있으면, 뺨을 간질이는 느긋한 바람이 불어와 말을 건네는 듯하다. 한쪽으로 깊은 갈대숲이 오솔길을 내고 길게 늘어져 있다. 간간히 갈대숲으로 이어지는 강가로 강태공들이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는 모습을 보면 한없는 여유를 느끼게 된다. 바쁜 도심의 일상을 가까운 강변에서 보내는 그들을 보면 부러움이 한없다.

 

나는 얼마 전 홀로 강변의 긴 갈대숲을 헤치고 들어갔다. 조금은 낯설어 조심스럽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아무 것도 안하고 있으면 아무 것도 얻을 것이 없다. 세상의 모든 것은 대단한 모험이 아니라도 낯선 곳에 온 의미를 찾으려면 움직여야 한다. 나는 그 강변의 갈대숲을 걸으며 낚시질을 하는 강태공과도 만나고 아이와 배를 띄운 우크라이나인을 만나기도 했다. 같은 도시라도 도심의 거리에서 만나는 사람과 강변에서 만나는 사람의 분위기는 또  다르다.

 

▲ 강태공 블라드 니꼴라예프 방송사에서 일하고 있다는 낚시꾼 블라드(38세)

나는 그곳에서 선한 모습의 낚시질을 하던 블라드(VLRAD, 38세)를 만났다. 나는 처음 그를 중년의 사내로 보았다. 흰 머리카락이 모자 사이로 비치고 가녀린 몸집에서 여지없는 중년의 모습이었다. 통성명을 하며 직업을 묻고 나이를 물었는데, 그는 이곳 방송사에서 일하는 38세에 두 아이의 아버지였다. 가까운 인근 아파트에 살며 가끔씩 낚시를 즐긴다고 했다. 그와 서로 사진을 찍고 몇 마디 나누며 서로의 연락처를 주고받았다. 다음에 만날 날을 기약하면서...

 

 

▲ 남강 나미브에 배타는 아이 아버지와 어린이가 배를 타고 즐기는 모습이 너무나 평화로워 보였다. 아이의 아버지에게 조심스럽게 사진 촬영에 대해 양해를 얻고 찍은 사진이다.

▲ 나미브 강에 배 타는 아이 배 타는 아이와 아버지......, 강대 숲 사이 사이 쉬었다가 다시 저 강 건너로 노를 저어 가는 모습이 참으로 평화로워 보인다.

 

그렇게 두 시간여 동안을 산책을 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강변 레스토랑에 들려 해지는 모습을 보기 위해 기다렸다. 그곳에서 아제르바이잔에서 와 강변 레스토랑을 하는 아밀(AMIL, 24세)을 알게 되었다. 그는 부모들이 모두 우크라이나에 살고 있다고 한다. 그는 군인으로 우크라이나에 왔다가 현지에 정착하게 되었다고 했다. 첫날 안면을 익히고 2~3일 후 다시 찾았다.

 

저녁 9시가 넘어야 해가 저무는 이곳에서는 일과를 마치고도 많은 사람들이 강변을 찾는다. 바로 강변에 아파트가 자리 잡고 있어 주거와 여가를 함께 즐기고 있다. 도심에서도 버스를 타면 20~30분 거리라서 퇴근 후에도 강변에서 가족과 즐기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마치 해수욕장의 풍경을 연상시키듯 비키니를 입고 수영을 즐기고 물놀이를 하는 사람들을 본다. 낮에는 낮대로 휴가철 풍경을 보는 듯하다. 퇴근 후에는 아주 멀리서 해수욕을 즐기러 온 우리네 피서인파와 흡사한 모습을 보여준다.

 

여유는 누가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찾는 것이라고 말해도 좋을 듯하다. 적어도 이곳 사람들에게는 말이다. 풍요가 넘치고 낭만이 넘치기에 무한한 조건을 갖춘 나라 우크라이나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드넓은 벌판을 보면 풍요가 넘실거리는 듯하고 넓은 강줄기가 나라 전체를 풍요롭게 흐르는 나라이니 말이다. 그래서 이 나라에 민족 시인 쉐브첸코는 자신의 젊음이 가혹한 시련의 시기를 지나가고 나서 젊음을 무한히 부러워한 시를 남겼나 보다.   

 

축제의 불 타오르고

 

쉐브첸코(1850년)

 

축제의 불이 타오르고 음악이 울린다.

가락은 흐느끼며 울부짖는다.

찬란한 다이아몬드같이

젊은이들 눈이 빛난다.

기쁨에 불타는 눈과 눈

희망찬 순결하고

생기 있는 눈동자여!

모두 소리 내어 웃는다.

즐겁게 춤을 춘다.

나는 그 광경 바라보며

하염없이 눈물짓는다.

왜 우는가?

허망하게 지나간

내 젊음 내 청춘 서러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