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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세상/내가 만난 세상 이야기

우크라이나 예빠토리야에서 제를 올렸습니다.

by 김형효 2009. 8. 31.

故 김대중 대통령! 우리 가슴에 영원히 살 님은 갔습니다
우크라이나 예빠토리야에서 제를 올렸습니다.
김형효 (tiger3029) 기자

모자란 것이 너무 많은 초라한 제를 올렸습니다. 우크라이나의 작은 도시 예빠토리야(고려인 140여 가구 거주)의 한 고려인 집에 머물고 있는 저는 그 분이 돌아가신 날에는 소식조차 알지 못했습니다. 다음날 가족에게 안부 전화를 했다가 소식을 접하고 아무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공교롭게도 전날의 붉은 노을을 보고 아름답다는 마음이 들어 흑해 바닷가인 세르게이(37세)의 집 근처 바닷가를 찾았습니다. 그리고 너무나 붉어서 아름다운 서쪽으로 깊이 잠들어가는 붉은 노을을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다음날 그분의 서거 소식을 듣고는 전날 붉은 노을에 찰랑거리는 파도와 그 물결이 붉게 물든 것을 보고 홀로 <바닷물꽃>을 마음속에 되뇌면서 집으로 돌아오던 일이 생각났습니다.

 

  
▲ 흑해의 노을 속에 핀 바닷물꽃! 2009년 8월 18일 오후 예빠토리야에서 김대중 대통령님의 서거 소식도 모른채 붉은 노을을 바라보았다.
ⓒ 김형효
흑해의 노을 속에 핀 바닷물꽃!

  
▲ 노을과 구름 또 다른 세상을 열어놓고 가시는가? 붉은 노을과 서녘 하늘을 박차고 오르는 듯한 구름 떼......, 희망의 용기가 퍼져가는 것이길 기대하며 바라본다.
ⓒ 김형효
노을과 구름 2009년 8월 18일 우크라이나

어쩌면 저렇게 붉은 <바닷물꽃>을 피우셨는가? 싶은 우연 같지 않은 상상을 홀로 했습니다. 사람의 일에 <필연 없이 우연 없다>고 되뇌면서 살아가는 나로서는 자꾸자꾸 그분의 일생에 족적들이 뇌리에 새겨지는 순간들이었습니다. 아파도 아프다 못하고 아프다고 말하면 그 순간부터 수많은 거친 말과 거친 억울로 온몸을 칭칭동여매버리던 그분의 가혹한 일생이 떠올라 눈물이 맺혔습니다. 

 

어찌해야 할지, 어찌 그분을 보내드려야 할지, 작은 한 걸음의 일생도  버거운 나로서는 가늠하기 어려웠습니다. 멍한 마음으로 그분의 일생이 자꾸 되뇌어지는 것을 느끼며 하루 또 하루를 보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다음날에 오마이뉴스에 시 한 편을 올렸습니다. 인터넷이 원활하지 않아 편집부에 서툰 영어로 짧은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그리고 그날 장을 보았습니다. 제를 올리기 위해서입니다.

 

  
▲ 우크라이나 예빠토리야에서 올린 제식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이것 뿐이었습니다.
ⓒ 김형효
우크라이나 예빠토리야에서 올린 제식

  
▲ 예빠토리야에서 차린 제식 2000년 6월 13일 평양 순안 공항! 남북 정상의 맞잡은 손은 수많은 사람들의 눈물샘을 울렸다고 세르게이에게 설명했다.
ⓒ 김형효
예빠토리야의 차린 제식

돼지고기를 사고 사과를 사고 바나나를 샀습니다. 그리고 초를 샀습니다. 향을 준비하지는 못했고 국화꽃을 바쳤습니다. 누군가와 함께 제를 올리고 싶었습니다. 얼마 전 내게 따지듯 <왜? 남과 북은 통일을 못하느냐?>고 말하던 세르게이(37세)의 집에 머물고 있는 나는 마음으로는 이곳의 고려인들을 초청해서 함께 제를 올리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조국에 대해 모국에 대해 너무나 모르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을 탓할 수도 없고 그저 멍한 마음으로 홀로 제를 올리기로 했습니다.

 

다행히 제를 올리려고 준비하는 나를 도와 세르게이의 부인인 고려인 3세 악사나(36세)가 새롭게 가스불로 흰쌀밥을 지어주었습니다. 그렇게 제사 음식을 장만한 나는 모자라지만 그렇게 제사상을 차렸습니다. 그렇게 초라하게 차려진 제사상 앞에 난 세르게이를 불렀습니다. 내가 임시로 머물고 있는 예빠토리야 고려인 세르게이(37세)는 김대중 대통령을 모릅니다. 나는 그에게 프린트 한 장의 영정도 마련하지 못하고 노트북에 인터넷에서 다운받은 사진자료를 설명해가며 제를 올렸습니다. 모양만 제사상인 초라한 의식이었습니다.

 

  
▲ 고려인 3세 세르게이의 묵념! 처음으로 김대중 대통령을 알게 된 세르게이의 묵념!
ⓒ 김형효
고려인 3세 세르게이의 묵념!

  
▲ 세르게이 김대중 대통령의 제식을 올리며 세르게이와의 대화를 나누었다. 사전을 찾아가면서 나눈 대화 속에서 이곳의 고려인들의 가슴 속에서도 김대중 대통령의 뜻이 살아나길 기대해본다.
ⓒ 김형효
김대중 대통령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

하지만, 내 마음 속에서 한 고려인과 그분을 보내는 자리는 또 다른 민족의 자랑을 설명할 수 있어 고마운 자리이기도 했습니다. 고이 잠드소서! 저는 세르게이와 함께 절을 하고 나서 묵념을 올렸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순명

 

김형효

 

해가 지고

뜨는 것처럼,

대인은 소리 없이 지고,

소리 없이 뜨는 것,

큰 사람은

그 후의 빛과

어둠을 빌어 말할 뿐이다.

 

  
▲ 김대중 대통령 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의 한 마디 한 마디......, 나는 세르게이에게 그분을 알렸습니다. 다른 고려인들에게도 알려나갈 것입니다.
ⓒ 김형효
김대중 대통령

그가 살았던 대인의 삶은 초극한 인간의 삶이었습니다. 그 뜻을 새기며 그분이 가신 길이 찬란한 빛이었음을 생각합니다. 저는 한 걸음 한 걸음 그분이 걸었던 길을 생각하겠습니다. 이곳의 고려인들에게 남아있는 좁쌀처럼 작은 민족에 대한 인식과 역사를 차근차근 가르치며 그들을 인정하며 제가 선 자리에서 모자라지만 저의 실천이 그분과 사는 길임을 되새기며 열심히 살아가려 합니다. 그것이 그분이 영원히 사는 길에서 조금은 자랑스런 저의 일이 되기를 기대해봅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해피수원뉴스에도 게재됩니다.

2009.08.23 18:11 ⓒ 2009 Ohmy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