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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세상/내가 만난 세상 이야기

언제 다시 보려나? 그리운 금강산!

by 김형효 2009. 7. 1.

- 6. 15 정상회담과 10. 4 공동선언을 넘어 - 북한의 시인들(19) 문재건 시인

 

여기 북녘 시인의 詩를 통해 자랑스럽게 다시 그리운 금강산을 그려본다. 이제 그리운 금강산은 닫힌 조국의 문이 되어버렸다. 언제 다시 지난 10년의 세월처럼 금강산을 오갈 수 있을까? 닫힌 50년 세월 너머에서 수많은 북녘 동포 시인이 자랑스러워했던 그리운 금강산~! 이제 언제 다시 닫힌 조국의 문이 열릴 것인가?

 

비봉포

문재건

 

떠가는 흰 구름에 부리를 대이고

하늘로 오르는 듯 솟구치는 듯

비봉포 비봉포

신비로운 폭포여

 

세존봉 골안에 뿌리를 두고

폭포는 땅에 내리닿건만

어찌하여 네 모습

오르는 듯만 싶으냐

 

일곱색 영롱한 무지개 어려

그 모습 화려한 전설의 새

꼬리를 휘저어

구름과 하나로 어울렸으니

 

금강산아

너는 이 땅우에

그 신묘로움 다 펼치고도 모자라

저 아름다움 하늘까지 뻗치는 것이냐

 

온 세상이 다 보라고

온 세상이 다 부러워하라고

하늘 중천에 날아오르는

금강의 경치, 조선의 폭포야

 

여기 북녘의 문재건 시인께서 "온 세상이 다 보라고/온 세상이 다 부러워하라고/하늘 중천에 날아오르는/금강의 경치, 조선의 폭포야"를 노래하던 것처럼 나는 노래하고 싶다. "온 세상이 다 보라고/온 세상이 다 부러워하라고/하늘 중천에 날아오르는/통일 한반도여! 오! 통일 겨레여"하고 통일의 노래를 온 세상이 보란 듯이 말이다.

 

 

 ▲ 금강산 만물상 화가 두시영 선생님이 그린 금강산~! 지난 2006년 한국의 화가들이 금강산에 다녀와 전시회가 열렸다.

     그림은 2007년 9월 예술의 전당에서 열린 두시영 선생의 전시 그림 <금강산 만물상>

 

그렇게 어린 시절 노래 속에서나 그려지던 그리운 금강산을 현실에서 볼 수 있게 되었다. 국민의 정부 출범 후 남북관계의 급진전으로 가능해졌다. 김대중 대통령이 오랜 세월 동안 역설해오던 평화공존번영정책이 우리들의 눈앞에서 화려하게 결실을 맺어가는 모습을 보는 듯했다. 남·북간의 교류확대를 위해 금강산관광은 3개 루트를 시작으로 현대그룹에 의해 1998년 11월 18일 금강호의 첫 취항으로 시작되었다.

 

특히 2000년 6월 15일, 대한민국의 김대중 대통령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이에 역사적인 첫 남·북 정상 회담을 가졌다. 이후 모든 남·북관계의 문호가 더욱 더 적극적으로 개방되기 시작했고, 이어 참여정부로 정권이 이어지면서 그 지속성은 불변하는 것으로 인식되었다. 그렇게 남·북은 순조롭게 민족 공영의 길로 발전해 나가는 것이었다. 당시의 분위기로 보면 한반도의 평화는 이제 되돌릴 수 없는 커다란 역사의 수레바퀴가 구르는 것처럼 보였다.

 

은사류에 손 잠그고

 

 

우에는 구룡연

아래는 련주담

한줄기 은실이냐

한줄기 금실이냐

 

바위짬 곧게곧게

실처럼 흘러흘러

헤비쳐서 은실이고

노을비쳐 금실이니

 

끝없는 네 흐름

련주담 옥류동의

수억만 옥구슬을

한오리에 다 꿰인 듯

 

그 실로

한 뜸 한 뜸 수를 놓아

절승의 경계를

금강에 펼치는가

 

끝없는 네 흐름

은실 되고 금실 되어

낮이고 밤이고 쉼없이

락원의 산수도를 이 강산에 펼치는가

 

아, 그래서

금강산은 이리도 화려하고

이리도 찬란한가

한줄기 물도 한방울 물도

 

은실 되고 금실 되고

구슬 되어 흘러라

내 나라, 내 조국을

수놓으며 수놓으며......,

 

하지만, 애처롭게도 남·북관계의 기반은 약했다. 남한의 보수정권이 들어서며 그 방향을 완전히 되돌려놓았다. 마치 싸움이 목표인 것처럼 그 동안 있었던 국민의 정부, 참여의 정부에 기조를 전면 부정한 것이다. 그것은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면서 6. 15공동선언과 10. 4 공동선언을 부정하였다. 거기에 관광객 한 사람의 무단 월경으로 발생된 총기 사고로 관광객이 사망하였다. 그 과정에서 불편은 고조되었고, 지금은 김영삼 정권 때의 사재기는 일어나고 있지 않지만, 그때 못지않은 불안한 관계는 이어져가고 있다.

 

더구나 남·북 모두에게 상징적인 공동체의 모습으로 미래를 열어가야 할 개성공단 문제마저 정부는 6. 15 공동선언과 10. 4 공동선언을 계속 불인정하는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그것만이 아니다. 남·북 공조의 기본적인 틀을 외면하고 외세의 영향력만을 더욱 키워내는 형국이다. 대체 이 나라 정부가 주권을 갖는 정부인지 의문이 들 정도이다. 이 정부는 왜 그토록 외세를 불러들여 남·북 문제를 풀어가려고 하는가? 그것도 2대에 걸친 대통령이 민족공조의 근본 틀을 구축해놓은 지난 10년을 잃어버린 세월로 규정해가면서까지... 분단 역사 이래 근 10년의 역사 공간에서만큼 남·북이 공조를 다진 역사는 없었다. 그렇기에 지금처럼 불안한 현상을 보고 장지연 선생이 살아계셨다면 신시일야방성대곡(新是日也放聲大哭)을 읊으셨으리라.

 

그리운 금강산은 많은 사람들이 관광을 통해서 바라보고 문화, 예술작품을 통해 보여지기도 했다. 이제 언제 다시 "은사류에 손 잠그고" 노래 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