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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세상/나의 여행기

낯선 나라에서 동요를 부르며 길을 걷는다.

by 김형효 2009. 9. 15.

낯선 나라에서 동요를 부르며 길을 걷는다.
예빠토리야 한글학교 소식
김형효 (tiger3029)

최근 질 낮은 중국산 mp3를 구했다. 그리고 러시아어와 영어 회화 자료를 입력하고 몇 가지 동요를 입력했다. 어느 날 나도 모르게 길을 걷다 동요를 흥얼거리다 홀로 웃음을 지었다. 불혹이 넘은 내가 동요를 흥얼거리며 낯선 나라의 길을 걷게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을 못했다.

  
▲ 예빠토리야 제일학교 모습 한글학교는 2층에 한 강의실을 빌려서 사용하고 있다. 오래된 학교이고 내부도 외형도 허름하지만 꿈이 자라고 있다.
ⓒ 김형효
예빠토리야 제일학교 모습

"나리나리 개나리 НАРИНАРИ ГЕНАРИ/입에 따다 물고요. ИВЕ ТТАДА МУЛГОЁ/병아리 떼 종종종 ВЁНГАРИ ТТЕ ЗОНЗОНЗОН/봄나들이 갑니다. ВОМНАДЫЛРИ ГАМНИДА"

 

  
▲ 동요를 가르치다. 나리나리 개나리를 가르쳤다. 내 기억에 "뿅뿅뿅"인데 나중에 인터넷을 검색해 보았더니 "종종종"이어서 다시 가르쳐 주었다.
ⓒ 김형효
나리나리 개나리

한글을 가르치며 틈틈이 동요를 가르친다. 그래서 까맣게 잊었던 어린 시절의 동요를 다시 부른다. 러시아어로 표기를 하고 한글을 가리키며 따라 부르게 했다. 처음 배울 때는 낯설어 하더니 곧잘 따라한다. 가르치는 동안 내가 즐겁다. 그 중 한 아이가 오는 10월에 우크라이나 어떤 페스티발에 나간다고 말했다.

 

토요일과 일요일에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첫 입학식이 끝나고 이제 세 차례의 수업을 진행했다. 10여명의 어린 학생들이 평일에는 정상 수업을 받고 다시 휴일에 연이어서 수업을 받으러 온다. 필자의 마음으로는 더 많은 시간을 그들에게 가르치고 싶다. 내게는 짧은 시간이지만, 그들이 기특하기만 하다.

 

이제 겨우 8살인 지마를 비롯해서 많아야 15살인 그들은 할아버지, 할머니 나라사람만 보고도 반가워한다. 대체 그들에게 무엇을 전하고 무엇을 가르쳐야할지 가늠할 수 없이 넘치는 마음만으로는 턱도 없이 모자라다는 생각이 날 짓누른다. 쉬는 시간에도 수업이 끝나고도 더없이 밝게 웃음 짓는 그들을 보면서 한없이 고맙다. 그들이 처음 본 나를 낯설어하고 불편해하면 어쩌겠는가?

  
▲ 김타냐의 노래부르기 타냐는 오는 10월 우크라이나 학생 페스티벌에 나가 부르겠다면 적극적으로 배운다. 나리나리를 배우고 곧 발표회를 할 정도로 잘 따라 불렀다.
ⓒ 김형효
김타냐의 노래부르기

첫 시간에 "나리나리 개나리"를 가르치고 두 번째 시간에는 "아리랑"을 가르쳐 주었다. 첫 시간에 잘 따라 해서 생긴 내 욕심이다. 그래서 "아리랑"을 꼭 가르쳐야겠다는 마음으로 수업을 준비하는 시간에 맞춰 아리랑을 러시아어로 표기하고 한글로 정리해서 준비했다.

 

АРИЛАН(아리랑)

АРИЛАН АРИЛАН АЛАРИЁ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АРИЛАН ГОГЕЛО НОМОГАНДА 아리랑 고개로 넘어 간다/НАЛЫЛВОРИГО ГАСИНЫН НИМН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СИМНИДО МОКАСО ВАЛВЁОНГ НАНДА 십리도 못가서 발병 난다

 

예빠토리야의 조그만 학교 교정에 토요일과 일요일에 10여명의 어린 고려인 학생들과 나는 아리랑을 부르고 우리네 동요를 배우고 부르며 동포애를 나눈다. 그 중에는 이미 오랜 세월을 지나오며 우리가 알아보기 힘든 혼혈도 있다. 하지만 그들의 내면에 흐르는 정서는 어쩔 수 없는 한민족의 정서가 흐르고 있는 것 같다.

 

지난 일요일 수업에는 그들 모두에게 한글 이름을 지어주었다. 봄빛, 하얀, 별빛, 달빛 등 필자가 생각나는 말들로 지었다. 더 좋은 이름들을 지어주지 못한 듯해서 미안한 마음도 든다. 하지만 내가 가진 정성은 다하고 있다. 날마다 그들로 인해 내가 새로워질 것만 같다.

 

 

 

 ▲ 입학식 소개 신문기사 우크라이나 신문 세 곳에 소개가 되었다고 한다. 수도인 키예프와 얄타에서도 비교적 큰 도시인 심페로폴 그리고 현지 예빠토리야 신문이다. 필자는 예빠토리야 신문만 보았다.

 

최근 우크라이나의 몇 몇 신문에 예빠토리야 한글학교 개교 및 입학식 기사가 나왔다. 필자는 러시아어를 잘 읽고 이해하지는 못해서 서툰 눈으로 보았지만, 입학식 소식을 비교적 상세히 보도한 것으로 읽혔다. 지난 토요일에는 교문 앞에서 어린 학생들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알고보니 예빠토리야 "즈드라브니짜"라는 신문에 소개된 자신들의 사진과 기사를 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내게 빨리 전해주려고 교실에도 들어가지 않고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이 스스로 기쁜 마음으로 한글을 배우고 있다는 마음이 들어 좋았다.

 

아직은 서툰 걸음마처럼 가나다라를 배우고 있고 할아버지, 할머니, 안녕하세요. 엄마, 아빠를 배웠지만, 아무 것도 모르던 것보다는 많은 걸음을 디딘 것이라 믿고 싶다. 고국에서도 많은 격려를 해주시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