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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세상/나의 여행기

불편한 현실로 가득하지만, 가족과 반가운 재회

by 김형효 2011. 3. 16.

장기 국외체류자의 귀국 소감 1

 

 

지난 3월 5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했다. 2년의 공백을 낯선 나라에서 보내고 귀국길에 올랐다. 우크라이나 키예프 공항에는 배웅을 위해 남은 단원과 공사님 부부가 함께해주었다. 고마운 일이다.

 

  
▲ 2년 임기를 마친 동료 단원들 2009년 3월 4일 함께 연수를 마치고 출국했던 동료단원들과 키예프 보리스풀공항에서 기념촬영, 흰옷입은 진보영 단원은 6개월 연장 근무를 하게 되었고 해외귀로여행을 신청한 단원을 재외한 4명은 함께 귀국했다.
ⓒ 김형효
2년 임기를 마친 동료 단원들

 

눈이 쌓인 키예프를 떠나며 익숙해진 낯선 나라 우크라이나에 많은 아쉬움도 남겨두고 왔다. 비행기가 이륙하고 멀리 내려다보이는 집들과 드네프르 강줄기가 나그네의 뒷길을 열어두는 느낌이었다. 언제든 다시 오시라는 듯..., 손사래를 치듯이 굽이쳐 흐르는 드네프르 강은 우크라이나인의 심장과도 같은 강이다.

 

1시간 30분 정도 비행했을 때 쯤 핀란드 상공이었던가? 멀리 산간벽지의 집들처럼 보이는 집들이 숲 사이로 보였다. 숲과 길 그리고 집들이 멀고 먼 거리감을 보여 유대감이 없어 보이는 풍경이다. 한국의 산하와는 다른 이국적 풍경이다. 그리움을 재촉하는 낯선 풍경이 이채로웠다. 비행기 창밖을 향해 사진을 찍기도 하며 귀국길 마음 재촉을 한다.

 

  
▲ 작은 선물 큰 정성 우크라이나 주재 한국대사관 김현덕 공사님과 부인께서 배웅을 나왔다. 김공사님의 부인께서 귀국길에 오르는 단원들에게 우크라이나 민속공예품을 선물로 전달하고 있다.
ⓒ 김형효
작은 선물 큰 정성

  
▲ 배웅객들과 기념촬영 왼쪽 끝 코이카 행정원과 배웅나온 대사관 공사님과 부인, 동료단원들이 함께 기념촬영, 가운데 김정후 태권도 단원이 선물로 받은 민속공예품을 들어보이고 있다.
ⓒ 김형효
배웅객들과 기념촬영

 

떠나오며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지 못한 사람들이 조금씩 멀어진다. 핀란드에 도착했다. 헬싱키 공항에는 아시아의 3대 강국이라 해도 손색이 없을 한국, 중국, 일본어로 된 안내문구가 반갑다. 한국과 많이 가까워진 느낌이다. 하지만 앞으로도 8시간 이상 비행을 해야 한다. 늦은 4일 오후를 넘어 5일 아침에 한국에 도착하는 것이다.

 

지루한 비행시간 동안에 아무런 상념도 사색도 사라져버린 것처럼 멍한 여행객이 되었다. 두 번째 기내식을 먹고 나자 한국의 아침이 느껴진다. 러시아 대륙과 중국을 가로질러온 비행기가 서해 상공을 날 때 붉은 아침 햇발이 비행기 창밖을 비춘다. 반갑다. 살가운 형제의 기운이 느껴지는 순간, 하지만 저 멀리 또 다른 동포들과 안녕을 고한 후다. 한참은 사색할 겨를이 없을 듯하다.

 

  
▲ 보리스풀 공항을 이륙한 다른 여객기 유로 2012년을 맞이하기 위해 바쁜 우크라이나다. 새롭게 단장한 공항대합실과 공항은 더욱 안전하고 쾌적해진 느낌이다. 비행기 안에서 이륙전 다른 여객기의 이륙장면을 찍었다.
ⓒ 김형효
보리스풀 공항을 이륙한 다른 여객기

  
▲ 내려다보이는 우크라이나 공항 인근 막 이륙한 비행기 안에서 2년 동안 정들었던 우크라이나를 내려다 보았다. 눈덮인 우크라이나 모습이다.
ⓒ 김형효
내려다보이는 우크라이나 공항 인근

 

공항에 사뿐히 내려앉은 비행기에서 서둘러 내린다. 함께 온 우크라이나인 아주머니를 마중 나온 우크라이나인과 만나도록 안내했다. 사실 일행과 함께 온 그녀의 딸과 사위는 한국주재 우크라이나 대사관 직원이라 했다. 이제는 익숙한 러시아어로 인사를 전한다. 다스비다니아!(До свидания!)

 

간단한 입국 수속을 마치고 2년간 함께했던 단원들과의 차 한 잔 나눌 여유도 없이 각자의 가족과의 만남 후를 기약하며 인사를 마쳤다. 오랫동안 가족과 헤어져 지낸 바쁜 걸음은 누구나 어쩔 수 없는 일인가보다. 필자도 걸음을 재촉하며 마중 나온 동생들과의 재회를 위해 짐 가방을 찾으며 정지시켰던 핸드폰을 개통하고 전화를 건다. 몇 차례 바쁘게 전화를 걸고 받은 후 재회의 기쁨을 나누었다. 여동생과 또 다른 여동생 부부와 조카가 공항에 나와주었다.  

 

  
▲ 핀란드 상공에서 내려다본 헬싱키 핀란드 수도 헬싱키 공항에 착륙하기 전, 숲 속의 마을들이 눈길을 끈다.
ⓒ 김형효
핀란드 상공에서 내려다본 헬싱키

  
▲ 헬싱키 공항의 아시아 3개국어 안내판 헬싱키 공항에는 아시아 3국의 언어로 된 안내판이 우리를 반기는 듯했다. 한국을 비롯한 3국의 여행자들도 매우 많아보였다.
ⓒ 김형효
헬싱키 공항의 아시아 3개국어 안내판

 

조카들과 함께 기념 촬영을 하고 있는데 남동생도 마중을 나왔다. 오랜 작별 후 만남은 기쁨과 반가움을 안겨주었다. 인근에 살고 있는 여동생 집으로 가서 회포를 풀었다. 저녁 시간에는 또 다른 남동생 부부가 함께했다. 곧장 부모님을 찾아뵙지 못하고 공항과 가까운 경기와 서울 인근에 형제들과 먼저 만남을 가진 것이다. 함께 어울려 식사를 하며 2년 사이에 훌쩍 커버린 아이들의 재롱도 보고 술잔도 기울였다.

 

다음 날 아침에는 서둘러 고향집으로 향했다. 부모님을 뵙기 위해서다. 팔순이 가까워오는 노령의 부모님을 두고 낯선 나라에서 보낸 자식이 몇 번이고 고마운 인사를 전하고 싶은 부모님이시다. 노령에도 불구하고 건강하셔서 자식이 해외에서 지내면서도 별 걱정없이 잘 지내다 올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언제나 변함없이 바라볼 수 있는 산하를 보며 고속버스에 몸을 실었다. 내 나라에서의 긴 여행길에 봄이 길동무가 되어주었다.

 

 

  
▲ 누이 가족들과 재회 어린 누이 동생들과 만남, 부쩍 자란 조카들과 누이 동생과 또 다른 누이 동생 부부 가족이 마중을 나왔다.
ⓒ 김형효
누이 가족들과 재회

 

모든 것이 반갑고 고맙고 기쁘다. 하지만 낯선 나라에서 익숙해진 내 나라의 불편한 현실들이 귀국길을 편하게 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2년의 활동을 마치고 귀국길에 오르면서 필자는 마치 귀국이 아닌 강제 송환되는 느낌이라는 표현을 썼다. 용산참사로 시작된 연수원 생활 이후 민주화를 이끌어온 빛나는 지도자 2명의 전임대통령을 잃었고, 수많은 불편부당한 일들이 밤낮처럼 횡행하는 현실이다. 그리고 그 걱정 많던 현실을 경험하는데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반가웠던 만남 사이사이로 물과 기름처럼 엇갈리는 내 나라 사람들의 불편한 현실이 보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