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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세상/나의 여행기

체념을 무기로 희망을 향해가는 네팔사람들

by 김형효 2011. 6. 6.

 

상그릴라(SHANGRI-LA)의 땅, 네팔에서(3)

 

아침 동안의 바쁜 인사는 곧 밀런의 집으로 이어졌다. 
밀런은 벌써 학원 강의를 나가고 없었다. 과거에도 마을에서 제일 바쁜 사람이 밀런이었다. 지금 네팔은 놀라울만큼 변했다. 그 변화는 긍정적인면도 있고 체념을 넘은 처절한 집념으로 이어지고 있다. 

지나간 바람은 기억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 바람이 상처였던 사람, 꿈을 간직하고 자신을 일으켜 온 사람들에게는 흔적으로 각인되어 남는다. 그것이 현재를 즐겁게 하기도 하고 몸부림치게도 한다. 

밀런의 집에는 20여명의 청년들이 한국어를 배우고 있었다. 합숙을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집 안에 들어서자 생면부지의 그들이 안녕하세요! 라고 인사를 전해온다. 기자는 밀런의 어머니에게 그리고 그의 동생인 라즈크마르에게 인사를 전하고 학생들이 모여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두 세 개의 방에 나뉘어 공부하던 그들이 자연스럽게 모여들었다. 

짧은 시간 한국어를 배우고 한국에 가서 도움이 될만한 이야기를 전했다. 노래도 가르쳐주고 한글로 하는 놀이도 가르쳐주었다. 한글공부에 흥미를 돋아주기 위해서였다. 지난 주 월요일 라즈크마르는 청운의 꿈을 안고 한국으로 떠났다.

구 왕궁 앞은 해외로 나가려는 네팔인들의 꿈의 광장으로 변했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또 다른 절망을 만나기도 한다. 이곳의 책임자는 필자의 지인이며 네팔인 작사가인 디네스 아디까리로 4년전 만해문학축전에 초대된 바 있다.

 

변화하는 나라 네팔, 군악대인지 의장대인지 모르겠다. 희망을 찾는 네팔인들 사이로 그들이 지나가고 있다. 버거운 네팔의 단면을 느낄 수도 있으리라.

지금 네팔의 아침은 지난 8년 전과 다르고 3년 전과도 다르다. 과거에는 10시에도 상점 문이 열리지 않던 네팔이다. 지금은 5시에도 6시에도 열린다. 사람들은 그보다 더 일찍 거리로 쏟아지듯 나온다. 바쁜 걸음이 과거 한국의 농촌 모습처럼 생각되기도 하였다. 비가 내리는 새벽 들녘을 거닐며 물꼬를 보고 들판을 사색하며 걷던 멋진 그림이다. 그 기억속의 아름다움은 지금 아스라하다. 

척박한 카트만두 도심을 걷는 이국 사람들을 보며 고향의 오래된 지난날을 사색한다는 것은 엉뚱하다 그러나 그 기억속의 지난날이 그만큼 아름다웠기 때문이리라.

화가 비케이의 화실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바쁜 걸음으로 인사를 마쳤다. 기자는 다시 비케이네 집에 돌아와 곧 그의 갤러리로 갔다. 비케이와 찌아를 마신 후 홀로 카트만두의 중심거리로 많은 관광객들이 반드시 거치는 타멜을 향했다. 침묵도 처절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가혹하기만 한 이전 왕궁 앞에는 나라를 떠나기 위한 수많은 인파가 몰려들고 있었다. 

네팔 왕궁 앞 거리 양편에 수많은 네팔인들이 모여들었다. 외국으로 가는 비자를 받기 위한 행렬이다. 맨발로 혹은 슬리퍼를 신고 누더기진 옷을 입은 사람, 길거리에 쓰러져 나뒹구는 사람, 아픈 사람들의 현실에 울컥 눈물이 나는 거리다.

타멜 거리에 히말라얀 은행 앞이다. 청중들이 모여 번다(파업)을 중단할 것을 촉구하는 집회 중이다.

일자리를 찾아 낯선 나라로 떠나려는 그들의 모습은 절규처럼 보였다. 모든 것을 잃어버려 마지막 남은 체념을 무기로 낯선 나라로 떠나는 것은 아닐까 싶었다. 

잃어버린 체념의 무덤처럼 남은 모든 것을 던지는 사람들로 보였다. 몇 사람과 네팔말로 인터뷰를 했다. 카타르, 리비아, 두바이, 이스라엘, 포르투갈, 그리고 그 뒷자리에 한국 등이다. 

그나마 한국으로 가려는 사람들은 더 큰 기회를 얻는 것이었다. 다른 나라로 가는 길은 상대적으로 많이 쉽지만, 그 모든 사람들을 충족시킬 수 있을 만큼 많은 일자리가 있는 것은 아닌 듯하다.

조금 더 안타깝게 보면 마치 자신을 던져 자신을 파는 마지막 자존심도 던지는 모습으로 보였다. 세계 노동이주민들의 현실이 이런 것은 아닐까? 그들의 가혹은 내국의 노동자들 무관한 일은 아니라 생각된다. 그들을 받아들이는 노동현장에서 내국인 노동자들 또한 가중되는 고통을 견뎌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