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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세상/나의 여행기

네팔에도 "스승의 날"이 있다

by 김형효 2011. 7. 29.

 

상그릴라(SHANGRI-LA)의 땅, 네팔에서(17)

지금 네팔은 곧 방학에 들어간다. 학년말 방학이 시작되는 것이다. 네팔은 우리네 3월 학기 개강이 아니라, 9월이 새 학기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다음날은 방학이 시작된 네팔의 한 초·중학교 학생으로부터 자신의 학교를 방문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그는 한국 상사주재원의 하우스키퍼로 일하며 우리네 중학교에 해당하는 9학년 학생이다. 그는 넌디 세컨드리 학교(Nandi Secondary School)에 다니고 있는 써밀라 쁘라밀라(18세)이다. 

아침 7시에 한국 상사 주재원의 집에 와서 아침 식사를 준비하고 집안 청소 일을 한 후 학교에 간다. 아침 8시 30분까지는 학교에 가야한다. 
일찍 일어나 1시간 30분 동안 일을 하고 학교에 가는 것이다. 그리고 학교를 마친 후 다시 집에 갔다가 오후 6시 이후부터 다시 2~3시간 일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의 표정은 밝기만 하다.

카트만두 소재 넌디 세컨드리 스쿨의 교문이다. 초라한 교문으로 보이지만, 745명의 재학생들이 공부하는 배움의 전당이다.


 

밝은 표정으로 인사를 하고 있다. 한 시간 정도 이야기를 나눈 후 기자를 배웅하는 학생들, 앞줄 두번째 학생이 써밀라 쁘라밀라(18세)이다. 그는 어려운 환경에서도 밝은 표정을 잃지 않는 학생으로 학업성적도 좋다고 한다.



기자가 그에게 호감을 갖게 된 것은 그의 구김살 없는 태도 때문이다. 
항상 자신감에 넘치는 상냥함은 그의 장점이란 생각이다. 아무튼 그의 초대에 거부할 이유도 없고 이미 네팔의 몇 개 학교를 찾은 경험도 있고 강의를 한 적도 있어 부담이 없었다. 학교는 그가 일하는 한국 상사 주재원의 집과도 가까웠다. 그의 학교를 찾아낸 후 알았지만 이미 여러 차례 지나친 익숙한 거리에 있었다. 

기자가 학교를 찾은 지난 7월 15일은 네팔의 스승의 날이었다. 
네팔의 기념일들이 한국보다 많지만, 대부분의 기념일들은 한국과 일치해서 더욱 흥미롭다. 어버이날, 스승의 날, 누이, 오빠, 어린이 날, 처음 밥을 먹기 시작하는 날 등이다. 특히 우리네 백일과 돌잔치 같은 처음 쌀밥을 먹는 날을 기리는 것은 색다르고 흥미롭다. 

여자 아이는 5개월 되는 날, 남자 아이는 6개월 되는 날 처음으로 쌀밥을 먹는다. 
그날은 일가친척을 불러 잔치를 연다. 커다란 축제에나 불러오는 흰두 바운(승려)이 와서 축원을 빌어준다. 이마 한 가운데 꽃을 으깬 가루를 붙여준다. 

학교를 찾아 막 교문에 들어서는 데 써밀라 쁘라밀라가 기자를 알아보고 기쁜 표정으로 교무실로 안내했다. 
그가 학교의 교감 선생님과 자신의 담임 선생 그리고 친구들을 소개한 후 자신의 교실로 안내했다. 자연스럽게 그의 교실에 간 기자는 기다린 수업을 진행하듯 그들에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40여명은 되어 보이는 학생들이 기자가 어린 시절 다니던 학교처럼 빽빽한 교실에 나무 책상과 걸상에 앉아 있었다. 

해당학교는 재학생 745명 교사 47명 규모의 학교였지만 변변한 운동장 하나 없었다.
물 만난 고기처럼이라고 해도 될까? 마냥 신난 기자가 그들의 역사와 한국의 과거 그리고 지금 네팔인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학생들이 호감을 갖고 기자를 바라보자 더 신이 났다. 그러나 마냥 기자의 이야기만 할 수 없었다. 학생을 불러 세워 노래를 듣고 싶다고 했다. 학생들이 자랑스럽게 자신들의 급우를 소개했다. 잠시 후 한 학생이 나와 네팔인의 정서가 스민 노래를 불러주었다.

 

 

학생들이 교무실로 찾아와 선생님들에게 꽃을 건네기도 하고 디까를 붙여달라고 하기도 했다. 서로 디까를 붙여주다 나중에는 네팔 전통 음식인 단과자를 전하기도 했는데 기자가 먹기에는 너무 달았다.


 

2시간여 강의를 마친 후 교문을 나서려는 데 학생들이 교내 청소를 하고 있었다. 맨 오른쪽 학생이 기자를 초청한 써밀라 쁘라밀라(18세)다.



곧 담임 선생이 들어왔고 담임 선생에게 자리를 양보하려는 기자에게 더 이야기해달라고 담임선생이 요청해 왔다. 잠시 사양을 하다가 다시 몇 마디 한 후 다른 교실로 갔다. 두 개 반에서 수업을 진행한 것이다. 

낙후한 시설이어서 안타까웠지만 학생들의 밝은 눈빛과 밝은 얼굴은 생동하는 느낌으로 충만했다. 
해당학교는 이미 한국의 한 대학과 인연이 있었는지 지난 2009년 1월 11일 화장실을 지어주었다는 동판이 붙어 있었다. 그들의 기억 속에 한국과의 인연이 현실에서 지속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특별 초대강사처럼 말이다. 그리고 잠시 후 그들에게서 디까를 붙여달라는 요청을 받기도 하고 또 그들이 기자에게 디까를 붙여주기를 원해서 그렇게 하라고 허락했다. 
이마 한 가운데(제3의 눈, 지혜의 샘)꽃을 으깬 가루를 붙여주는 것은 네팔인들에게는 가장 큰 축원을 하는 의미가 있다. 혹시 네팔인들을 만났을 때 그런 축원을 바라거나 원할 때 사양하지 마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