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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세상/나의 여행기

게으름없이 공부하는 네팔 어린이들

by 김형효 2011. 7. 21.

 

 상그릴라(SHANGRI-LA)의 땅, 네팔에서(12)

처음 네팔의 한 노동자 밀런 쉬레스타(27세)를 따라 네팔에 왔을 때 만난 네팔 아이들

네팔의 어린이들의 학업 능력은 놀라울 정도로 뛰어나다. 어려운 여건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뛰어난 능력을 보이는 것은 수업 이외의 다른 놀이가 없어서 일지도 모른다. 

기자가 8년전 처음 만난 네팔의 청소년 중 무나(현 23세)는 지금 미국에서 의대를 훌륭한 성적으로 마쳤다.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 가장 놀란 일은 네팔 시인 럭스미 쁘라싸다 데보코타의 시를 교과서를 보고 영어로 직역하는 것이었다. 

네팔의 대표적인 한국음식점 빌라에베레스트에서 사진만 찍었다. 사진 뒷편의 소녀가 지금은 미국에서 석사과정을 공부하는 무나 쉬레스타(23세)다.

이후 그 시를 기자가 한국어로 번역해서 소개한 바 있다. 지금은 미국의 한 대학에서 석사과정에 다니고 있다. 우수한 성적으로 걱정없이 대학원을 장학생으로 다니고 있다. 그녀는 초기 미국 생활을 견뎌내느라 미국의 한 한국 식료품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했다. 당시 기자를 알고 지낸 경험과 한국인의 친절에 대해 말할 때는 생면부지의 미국의 한국인에게 고마움을 느끼기도 했다. 

그때 만난 네팔의 어린이 중 레비카라는 아이는 당시 8살이었다. 지금은 16살이 되었는데 그녀 또한 좋은 성적으로 학교에 다니고 있다. 쉬는 시간이면 부모들이 일하는 곳에서 함께 찌아를 즐겨 마신다. 때로 동네 아이들과 어울리지만 특별한 놀이가 있는 것은 아니다. 요즘 들어 컴퓨터를 들여다보는 아이들이 있지만 여전히 공부를 게을리하지는 않는다. 


네팔의 아이들이 그들의 부모와 있을 때를 살펴보면 기자의 어린 시절 한국과 너무나 닮아있다. 공부를 하라고 채근하는 부모님과 그 말에 대개의 아이들은 순응했다. 그런 어린 시절 한국의 아이들도 특별히 어려움을 겪는 경우를 제외하고 나름 좋은 성적을 유지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홀어머니가 운영하는 상점을 보며 구김살 없는 표정으로 공부하는 어스미따(12세)다. 누가 그의 앞길을 열어줄 수 없을까?

네팔의 지방 도시의 아이들 중 경제적 여유가 있는 부모들은 카트만두에 유학을 보낸다. 카트만두 인근 지역의 부모들도 마찬가지다. 어린 아이들도 학교 기숙사에서 생활하다 금요일 오후에나 집에 돌아간다. 토요일이 공휴일이기 때문이다.  네팔에서는 금요일이 한국의 예전 토요일이라 생각하면 된다. 일요일은 한국의 월요일로 모든 공공기관의 업무가 개시된다.


이번 비자를 갱신하는 요일이 금요일이었다. 기자가 금요일 오후 3시 30분 업무종료시간에 도착했더니 비자발급을 해주지 않았다. 금요일은 오후 3시에 업무를 종료한다고 했다. 다행히 금요일 오후부터 토요일이 휴일로 인정되어 비자가 경과되었지만 무탈했다. 기자와 인연을 맺은 네팔의 아이들이 이제 청소년이 되었다. 청소년이었던 아이들은 이제 주류사회의 역군으로 발전해가고 있다. 

 
그중 한국에서 일했던 네팔 이주노동자들은 네팔 경제에 주요 발전 기반이 되었다. 대개의 이주노동자들이 사업체를 차리거나 금융회사를 차려 일하고 있었다. 수원에서 건설현장에서 벽돌을 나르는 막일을 하던 수만 라이(36세)도 그중 하나다.